세탁소에 옷을 맡기던 늦은 오후

📅 2025년 09월 10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오후, 동네 세탁소의 둥근 드럼이 천천히 돌아갑니다. 미지근한 습기가 공기 속에 섞이고, 비닐 커버가 서로 스치며 아주 작은 사각거림을 냅니다. 형광등 아래에서 주인 부부는 태그를 끼우고 이름을 확인합니다. 커다란 바구니 안에는 각자의 하루가 접혀 들어가 있지요. 소매 끝의 보풀, 깃에 남은 희미한 향수, 주머니에서 발견된 접힌 영수증 한 장. 옷은 몸을 따라 움직이며 우리의 시간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곳에 서 있을 때마다 ‘맡긴다’는 말의 온도를 생각합니다. 손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건네는 일, 이제는 내 손이 아닌 곳에서 그 일이 진행되도록 허락하는 일. 우리가 직접 문지르고 비벼도 지워지지 않던 얼룩을, 누군가의 기술과 정성에 부탁하는 일. 그 작은 부탁이 주는 안도감이 있습니다. 완벽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내 흔적을 세심히 다루어 준다는 사실이 마음을 다독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옷감보다 깊은 자리에 얼룩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말끝에 박힌 미안함, 잠들지 못하게 하는 생각의 매듭, 괜스레 무거워진 어깨. 그럴 때 어떤 분들은 조용히 기도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십니다. 어떤 분들은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고, 또 다른 분들은 가만히 손을 모읍니다. 저는 그 순간들이 모두 하나의 ‘맡김’이라고 느낍니다. 내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손길에 건네는 일 말입니다.

문득 이런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세탁표처럼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맡김이라서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깊이 믿음이 요구되는 맡김이지요. 하지만 이름표가 달린 옷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주님의 시선이 먼저 가 닿아 있음을 떠올려 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관대에서 잊히는 법이 없다는 약속처럼요.

세탁소 한쪽에서는 증기가 짧게 울음을 토하고, 다리미 끝이 옷의 길을 따라 미끄러집니다. 주름이 조금씩 덜 겹쳐지고 솔기가 단정해질 때, 저는 마음의 결도 이렇게 다듬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간혹 완고한 얼룩은 “최대한 해 보았습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 문구가 저는 좋습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흔적을 미워하지 않고, 다만 더 깨끗해진 전체 속에 조심스레 안아 돌려보내는 태도. 우리 삶의 몇몇 상처도 그렇게 돌아오지 않나 싶습니다. 완벽한 흰빛은 아니어도, 닦이고 말려 더 살갑게 몸에 붙는 결로.

옷을 맡기고 나오는 길, 빈 옷걸이만 손에 남을 때의 가벼움과 허전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마음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내려놓으면 처음에는 허전함이 앞서지만, 그 빈자리를 지나 시간이 조금 흐르면 손에 온기가 돌아옵니다. 며칠 뒤 다시 건네받는 옷의 온도를 만질 때처럼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간격을 통과한 것들은 대개 더 말랑해져 돌아옵니다.

오늘도 각자의 주머니 속에는 이름 붙이지 못한 쪽지가 하나쯤 들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꺼내 보이기 멋쩍어 미뤄 둔 마음의 구김도 있을지요. 세탁소의 드럼이 묵묵히 한 바퀴, 또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우리 안에서도 작은 원이 그려집니다. 맡겨 놓은 것들 사이로 시간이 스며들고, 기다림이 조용히 일을 합니다. 다림질된 옷을 다시 어깨에 걸칠 때처럼, 불쑥 설명하기 어려운 가벼움이 우리를 스쳐 지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 가벼움이 꼭 기적일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오늘의 숨이 어제보다 조금 덜 껄끄러워졌다면, 그 또한 충분한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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