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도장 한 번, 마음 한 통

📅 2025년 09월 11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우체국 문이 미닫이 소리를 내며 열릴 때, 번호표가 얇은 혀처럼 말려 손바닥에 내려앉습니다. 잉크 냄새와 종이 쓸리는 소리가 낮게 섞여 있습니다. 투명한 유리 칸막이 너머, 창구 직원의 고개가 규칙적으로 끄덕이고, 고무도장이 종종 ‘탁’ 소리를 남깁니다. 그 소리는 짧지만, 무언가가 분명히 출발했다는 표식처럼 들립니다.

대기 의자에 앉은 분들이 각자의 봉투와 상자를 품에 안고 순서를 기다립니다. 어떤 분은 상자 모서리를 손끝으로 자꾸 매만지고, 또 어떤 분은 받는 이의 이름을 여러 번 써보는지 같은 글씨가 여럿 겹쳐 있습니다.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빈칸을 오래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종이 위에 내려앉아 모양을 고르고 있는 듯합니다.

삶에는 ‘보낼 것들’이 참 많습니다. 안부 한 줄, 미안함의 한숨, 고맙다는 쑥스러운 마음, 오랫동안 미뤄둔 소식 하나. 제때 부치지 못해 서랍 속에 접힌 채 묵어버린 감정도 있습니다. 나중에 펼치면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변해 있지요. 그때마다 ‘우표’ 같은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겠지요.

기도가 종종 떠오릅니다. 보내는 사람란에는 서툰 저의 이름을 적고, 받는 사람란에는 주님의 자비를 써 넣는 일. 띄어쓰기조차 자신 없을 때가 있지만, 창구 앞에서처럼 결국은 제출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내 손을 떠난 고백이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다 보이지 않아도, 어느 집배원이 그 길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분류하고 배달해 주는 길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우체국의 소인은 흔적을 남깁니다. 날짜와 시각, 출발지의 이름. 봉투 위로 둥근 자국이 찍히면,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만 속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정의 시간표에 올라탄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창구를 떠날 때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마음도 조금 정돈됩니다. 전하고 싶은 것을 보냈다는 단순함이 주는 평안이 있습니다.

오래전, 병실에 계신 한 분께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굵은 펜을 골라 천천히 적어 내려갔습니다. 말로 만나면 금세 흘러가던 문장이, 종이 위에서는 숨을 고르며 나왔습니다. 마지막에 이름을 적고 봉투를 봉한 뒤, 우표를 꾹 눌렀습니다. 손끝에 퍼지는 작은 저항감과 함께, 이상하게도 감사가 올라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정성을 다했다는, 그 이상은 다른 분의 손에 맡겨도 좋겠다는 수긍이었습니다.

배달되는 동안 봉투는 여럿의 손을 거칩니다. 분류장의 컨베이어 벨트, 트럭 기사님의 등에 밟힌 저녁의 피곤함, 비에 젖었다 말라 굽은 구석. 그런데도 대개 주소지에는 닿습니다. 사람의 손길과 수고가 잇는 길 위로, 약속 같은 질서가 작동합니다. 우리 마음의 사연들도 이와 비슷하게 누군가의 배려를 타고 건너갑니다. 도착 직전의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질 뿐이지요.

창구 앞에서 순서가 다가올수록, 적어 놓은 주소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맞춤법 하나, 숫자 하나까지 살필수록, 내 마음의 방향도 또렷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내가 정말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이 한 장의 종이가 알려 줍니다. 불필요한 말과 과한 포장은 줄고, 필요한 핵심만 남습니다. 종종 그 핵심은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응축되곤 합니다.

소인이 찍히고, 창구 유리 아래 좁은 틈으로 봉투가 미끄러져 들어갈 때, 손바닥에 빈 자리의 온기가 남습니다. 그 온기는 잠시 뒤 사라지지만, 마음 어딘가에 새 길이 열렸다는 느낌이 오래 남습니다. 돌아서는 발걸음에 햇살이 옅게 묻고, 문이 닫히며 번호표가 둥글게 말립니다. 어쩌면 같은 시각, 멀리 있는 누군가의 우편함 뚜껑이 조용히 열렸다가 다시 내려앉고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내 안에서도 그런 소리가 났던 것 같습니다. 보내고 난 자리에서, 조용히,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인사가 도착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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