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9월 13일 11시 07분 발행
해가 골목 끝으로 기울던 저녁, 작은 세탁소 유리문이 조용히 열리고 종소리가 한 번 울렸습니다. 철제 레일 위로 옷걸이가 미끄러지며 나는 소리가 얇게 이어졌고, 스팀은 들숨처럼 천천히 올라 천장에 매달렸습니다. 주인은 낮은 볼륨의 라디오 곁에서 다리미 손잡이를 감싸 쥐고 있었지요. 열과 물, 비누 냄새가 한데 섞여 하루의 이야기들을 부드럽게 풀어놓는 것 같았습니다.
수거 바구니에는 각자의 시간이 접혀 있었습니다. 버스 좌석의 먼지, 부엌에서 튄 간장 자국, 꽃시장 지나던 때 묻은 향기, 안아 올렸던 아이가 남긴 작은 얼룩. 옷마다 주머니 속에는 종이 한 장, 동전 한 개, 접힌 영수증처럼 말이 없이 많은 사정들이 따라옵니다. 주인은 그것들을 주워 모아 계산대 한쪽에 놓고, 옷깃을 쓸어 올려 이름표를 달아 둡니다. 하얀 종이 위 검은 글씨가 말해 줍니다. 이 옷의 주인을 잊지 않겠다고.
맡긴다는 건 때로 벗어 놓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마음 한켠을 풀어 고리에 걸어 두고, 내 손에서 떠나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지요. ‘완료일’이라는 약속을 믿으며, 내 것이지만 잠시 내 손이 아닌 곳에 둡니다. 그 사이 옷은 물을 만나고, 거품을 지나고, 열의 손길을 건너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에는 살짝 가벼워져 있습니다. 주름이 펴지고, 색이 본래의 빛을 조금 되찾습니다.
한 번은 오래 묵은 얼룩이 있던 재킷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주인은 말없이 밝은 스티커를 붙이며 말했습니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습니다. 조급함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종류의 자국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누군가 내 시간의 속도와 상관없이 끝까지 다림질해 줄 것이라는 예감이 그날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맡긴다는 동사는 세탁소의 표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것임을 분명히 붙여 주고, 그 이름을 잊지 않는 쪽으로 전해 드리는 일. 그 사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다림 속에서 내 이름이 거기에서도 분명히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일. 맡김은 손을 놓는 일이지만, 또한 이름을 더 또렷하게 듣는 시간이 되곤 합니다.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계산대 옆 은색 쟁반에 안전핀 몇 개와 여분 단추들이 조용히 모여 있었습니다. 떨어진 것들을 임시로 이어 주는 소품들. 우리 삶에도 그런 사소한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 한마디, 눈인사 하나, 전해 놓은 작은 메모. 큰일은 아니지만 단추 하나가 제자리를 찾는 사이 옷 전체가 다시 제 기능을 하듯, 작은 것들이 하루의 모양을 지켜 줍니다.
사람들은 비닐에 감싼 옷을 품에 안고 나갔습니다. 문이 닫히고 종소리가 다시 울린 뒤에도, 실내에는 미지근한 김과 다림질의 잔향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기운은 마치 오늘의 피로가 아직 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준비 중이라는 표시는 때때로 가장 따뜻한 말이 됩니다.
오늘 저녁, 마음속에도 작은 레일 하나가 설치된 듯합니다. 이름표가 달린 기억들이 한 벌씩 천천히 지나갑니다. 다 지울 수는 없겠지만, 어떤 자국은 시간이 감싸고, 어떤 구김은 사랑이 덮습니다. 돌아볼수록 분명해지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맡긴 것들은 잊히지 않았고, 내 이름은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그 사실이 오늘의 마지막 빛처럼, 조용히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