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드럼 속의 오후

📅 2025년 09월 17일 07시 01분 발행

코인 빨래방의 문을 밀고 들어서면, 적당한 온기의 공기와 세제의 은근한 향이 먼저 반겨줍니다. 드럼이 도는 낮은 소리가 바닥을 타고 전해지고, 벽에 기대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는 잠시 앉았다 간 이들의 체온이 남아 있습니다. 숫자가 내려가는 작은 화면을 바라보다 보면, 해야 할 말을 정리할 여유가 조금씩 생깁니다. 기다림밖에 할 수 없는 곳에서는 마음도 함께 기다림을 배우는 듯합니다.

드럼 안에서 옷들이 서로 부딪히며 물을 품었다 놓습니다. 거품이 일었다 가라앉고, 탁하던 물이 어느 순간 맑아집니다. 언젠가의 한 주간이 떠오릅니다. 쌓아 두었던 사소한 마음의 먼지들, 누군가에게 미안했으나 다 못한 이야기, 돌아보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밤을 묵직하게 만들던 염려들. 물이 흔들 때 비로소 밖으로 나오는 것들이 있듯, 조용한 흔들림이 있어야만 드러나는 것이 우리 안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색깔이 진한 것과 연한 것을 나누어 두었더니, 서로의 색이 번지지 않습니다. 관계에도 그런 간격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하되 섞이지 않음으로 오히려 서로를 지켜 주는 거리, 말 한마디를 덜어냄으로 마음의 색이 흐려지지 않는 지점. 서늘한 결심이 아니라, 다정함을 오래 지키려는 배려처럼 느껴집니다.

맞은편 드럼의 원형 문에 제 모습이 얕게 겹쳐 보입니다. 천들이 도는 속도에 맞추어 얼굴의 표정도 조금 흔들립니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잘한 것도, 아쉬운 것도, 말갛게 헹궈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드럼 옆 작은 필터에는 보풀이 모여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마찰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들, 그러나 치워지고 나면 기계가 더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우리도 그 필터를 가끔 들여다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붙잡고만 있던 말들, 오래 묵힌 감정의 가루들을 조심스레 털어 내는 일. 그저 지워 버린다기보다, 수고했음을 알아주고 보내 주는 마음으로요.

탈수로 속도가 높아질 때, 드럼은 몸을 가볍게 하려는 듯 더 빠르게 둥급니다. 힘주어 붙들던 물을 내려놓는 순간입니다. 그때 문득,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살피고 계시다는 확인. 내려놓음은 비우기보다 맡겨 둠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조용히 지나갑니다.

문이 열리고 따뜻함이 퍼져 나올 때, 작은 수건 하나를 꺼내 접어 봅니다. 모서리를 맞추어 포개니, 어지러웠던 숨도 가지런해지는 느낌입니다. 구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손을 타며 결이 고요해집니다. 용서도 그와 비슷합니다. 모든 흔적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결을 기억한 채 다루는 일. 그래서 오래 쓰고도 부드러운 천이 되듯, 마음도 시간이 지나며 더 온유해질 수 있겠습니다.

따뜻한 빨래망을 어깨에 올리고 밖으로 나서면 세상은 여전히 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별한 변화는 없는데, 어깨에 닿은 온기가 속까지 번집니다. 손바닥에 남은 섬유의 촉감이 오늘의 마음을 알려 주는 듯합니다. 거창하지 않은 청결, 말없이 이루어진 돌봄, 기다림 끝에 건네받는 가벼움. 이런 것들이 하루를 지탱해 주는 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럼이 멈추고 고요가 돌아온 자리처럼, 우리 안에도 잠깐의 빈틈이 생기는 저녁입니다. 그 빈틈에 포개어 둔 따뜻함이 오래 식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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