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과 우표 사이

📅 2025년 09월 18일 07시 01분 발행

점심 무렵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유리문을 통과한 빛이 바닥에 네모난 조각들을 깔아놓고, 번호표 종이는 손에 닿자마자 부드럽게 말렸습니다. 카운터 너머에서 들리는 테이프의 사각거림, 도장이 잉크패드를 찍고 종이에 안착하는 낮은 소리, 상자 모서리를 정갈하게 매만지는 직원의 손놀림이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붉은 LED 숫자가 깜박이며 봉투의 무게를 말할 때, 그 숫자는 언제나 솔직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울판 위에는 종이와 끈, 작은 선물과 몇 줄의 글이 올려졌습니다. 누군가의 생일을 건너가는 비스킷 상자, 타지의 손주에게 가는 목도리, 병상에 누운 이에게 닿을 얇은 카드. 무게는 몇 백그램에 그치지만, 그 속에 담긴 사연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한 할머니가 상자의 테이프를 다시 눌러 붙이며 “이 정도면 가겠죠?” 하고 묻자, 직원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어쩐지 제 마음도 스스로의 모서리를 한 번 더 눌러 보고 싶어졌습니다. 혹시 아직 덜 붙여진 곳은 없는지, 새어 나가는 공기가 없는지 살피듯이 말입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상자를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단하고 가벼워 보이는데, 품고 있는 사연이 오래 눌어붙어 손잡이가 닳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을 열면 멀쩡해 보이다가도 혼자 있을 때는 어딘가 푹 꺼지는 구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울은 그런 속사정을 묻지 않지만, 삶은 종종 그 비밀을 건드려 묘한 울림을 남기곤 합니다. 번호가 하나씩 불릴 때마다 마음속에서도 차례가 오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부치지 않으면 자꾸 미뤄질 사과, 지금 보내지 않으면 낡아 버릴 감사, 아무 말도 붙이지 않은 채 오래 묵혀 둔 그리움. 봉투를 봉하기 전에 건조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내 안에서 아직 붙이지 못한 우표들을 떠올렸습니다. 주소를 적는 일처럼, 말을 건넬 방향을 정하는 일의 어려움도 생각났습니다.

문득 베드로전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 말씀은 마치 카운터 앞 작은 저울 같았습니다. 정죄하는 저울이 아니라, 내려놓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저울. 무엇을 올려도 당황하지 않고 숫자를 보여주는 것처럼, 그분의 마음은 숨기려 드는 우리를 다급하게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올려두어도 된다는, 잠시 두 손을 비워도 괜찮다는 넉넉함이 거기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한 박스 가득 염려를 올릴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손바닥만 한 봉투 하나 올려둘 수 있을 겁니다. 저울은 누구의 것을 더 귀하다고 기록하지 않겠지요. 다만 있는 그대로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저는 숫자를 확인한 뒤 우표를 한 장 더 붙였습니다. 멀리 돌아가 닿을 길을 생각하니, 마음 한켠에서 오래 묵은 문장이 조심스럽게 풀렸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내 말 한 줄이 먼 곳의 하루를 조금 밝히기를. 우체국을 나오며 손끝에 남은 접착제의 달큰한 냄새가 이상하게도 포근했습니다. 바닥에 깔렸던 사각의 빛 조각들이 발끝을 지나갈 때, 마음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마도 오늘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봉투 하나를 더 붙잡아 봉했고,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 그 봉투를 올려두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기록되는 무게가 있듯, 돌봄의 마음도 그렇게 어디엔가 정확히 적히는 법이라는 생각이 조용히 뒤따랐습니다.

번호표는 쓰임을 마치고 주머니에서 사라졌지만, 내 안의 번호는 여전히 불리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꼭 보낼 말, 꼭 건네고 싶은 미소, 꼭 내려놓고 싶은 짐. 오늘 그 사이에서 잠시 멈추어 선 시간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저울과 우표 사이, 그 짧은 틈에서 마음이 쉬어갈 자리를 발견한 듯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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