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의 느린 바늘

📅 2025년 09월 19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오후, 코트 안감이 갈라져 동네 수선집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형광등 아래 여러 색의 실타래가 층층이 놓여 있었고, 작은 자석 그릇에 모인 핀들이 미세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재봉틀은 낮은 박자를 타듯 천천히 울렸고, 사장님의 집게손가락에는 오래 길든 골무가 단단히 끼워져 있었습니다. 손마디에는 하얀 초크 가루가 박혀 있었지요. 기다리는 동안 낡은 의자에 앉아 단추 상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검정이라 부르는 단추만 해도, 가까이서 보면 밤, 숯, 자줏빛 그림자가 다 달랐습니다. 같은 이름 아래에도 이렇게 많은 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잠시 후 제 코트는 뒤집힌 채 수선대 위에 누웠습니다. 겉감과 안감 사이로 얇은 심지가 드러나고, 느린 바늘이 천을 통과할 때마다 아주 작은 사각거림이 들렸습니다. 바늘땀은 눈으로는 크게 보이지 않았지만, 한 땀 한 땀 모일수록 찢어진 곳은 제 자리를 찾아가더군요. 사장님은 겉에서 티 나지 않는 것이 오래 간다고, 튼튼함은 안쪽에서 결정된다고 말해 주셨습니다. 겉면은 곧게 뻗은 선으로 정리되지만, 안쪽에는 자잘한 매듭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매듭이 있어 옷이 흩어지지 않는다고요.

그 말을 듣는 동안, 마음 한켠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컥거리는 날들이 오래 쌓였던 분들. 관계의 가장자리에서 실밥이 가늘게 풀려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서둘러 큰 시침으로 덮어 두고 넘어갈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빠른 땀은 눈에 띄지만 금세 풀리기 쉽습니다. 느린 바늘이 오래 간다는 말이, 꼭 옷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재봉틀 소리가 한 번 멎고, 사장님은 안쪽에 덧댈 작은 천을 고르셨습니다. 완전히 같은 색은 없었습니다. 대신 기존의 빛과 가장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색을 찾으셨지요. 저는 그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아도, 오늘의 결이 조심스레 맞닿으면, 경계가 부끄러운 흉이 아니라 견고한 자리로 변해 가는구나 하고요. 매듭은 숨지만, 숨는다는 사실이 그것을 덜 귀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남몰래 붙들어 주는 일이 세상을 지탱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4). 띠는 보통 밖에서 보이지만, 그 사랑의 힘은 안쪽에서 옷과 사람을 모두 붙잡아 줍니다. 말보다 눈길이, 설명보다 기다림이, 때로는 침묵이 안감이 되어 서로를 받치는 순간들이 있지요. 오늘 누군가의 헐거운 자리를 알아채는 마음 하나가 있다면, 그것이 이미 보이지 않는 매듭일지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쳐진 코트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손끝에 단단한 봉제의 질감이 느껴졌고, 이유 없이 마음이 놓였습니다. 겉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데, 안쪽이 달라졌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삶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크고 눈부신 변화가 아니어도, 보이지 않는 한 땀의 정성이 하루를 다르게 만듭니다. 오늘의 당신 곁에도 느린 바늘이 분명히 움직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조용한 박자에 마음을 잠깐 기대어 보니, 아직 이어 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고요히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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