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불빛이 켜질 때

📅 2025년 09월 22일 07시 01분 발행

아파트 계단참은 저녁이 깊을수록 조용해집니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한 칸 내려앉으면, 벽에 숨겨진 눈이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불이 켜집니다. 반 박자 늦게 환한 빛이 번져 나오고, 금속 손잡이는 작은 온기를 품습니다. 젖은 신발 바닥에서 물기가 미세하게 미끄러지고, 현관문 틈 사이로 끓는 국의 냄새가 지나갑니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상승하는 붉은 점을 남긴 채 멀어지고, 복도 택배 상자에서 종이테이프가 조금 들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 몇 초의 밝음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호흡과 고요를 동시에 느끼게 되지요.

가끔 마음이 그 불빛과 닮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반짝이기보다 누군가의 움직임을 기다렸다가 은근히 켜지는 지연 스위치 같달까요. 오랜 침묵 끝에 도착한 짧은 안부 문자, 미루기만 하던 계획의 첫 줄을 조심스레 적는 손, 이름을 잃었던 무언가를 다시 불러 주는 목소리. 그런 작은 움직임 하나가 마음의 어둠을 깨우고, 준비되어 있던 불이 조용히 살아납니다. 빛이 우리에게서 뿜어져 나왔다기보다, 이미 근처에 세워져 있다가 ‘이제 오셨군요’ 하며 켜지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어린 시절 살던 집 마당에도 비슷한 빛이 있었습니다. 장독대 옆 백열등이 낡은 끈에 매달려 있었지요. 밤이면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그 불을 기다렸습니다. 끈을 한 번 당기면 전구가 잠깐 떨리듯 밝아지고, 먼지 앉은 유리갓에 원을 그리며 빛이 번졌습니다. 그 순간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발밑의 물자국과 장독대의 둥근 윤곽이 나타났습니다. 길을 찾기에는 충분한 만큼의 빛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밤마다 미리 준비해 두시는 것도 어쩌면 그런 종류의 빛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낮은 숨결로 다가오는 빛이어서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연히 켜질 거라는 익숙함 때문에, 우리는 그 등불의 출처를 잊곤 합니다. 하지만 계단참에서 갑자기 밝혀지는 그 짧은 환함처럼, 우리 일상의 가장 소소한 장면에도 누군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계신 흔적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하루를 지나고 돌아오는 길, 스위치가 반응하는 시간차만큼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동 neighbors의 발자국이 앞서고 뒤따르고, 각자의 문 앞에는 다른 그림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 사이를 건너는 동안, 불빛이 생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길을 놓치지 않게 합니다. 어둠이 뒤에 남아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돕습니다. 밝음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지금 필요한 만큼은 보여 주는 힘.

잠시 후 불은 다시 서서히 줄어들겠지요. 그러나 빛이 가늘어지는 동안에도 벽은 잔광을 오래 붙잡습니다. 사람의 손 닿은 자리, 하루의 무게가 지나간 자국, 웃음과 한숨이 같은 곳에 붙어 있다는 사실까지도, 낮은 밝기의 불이 소리 없이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그런 잔광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위로가 천천히 스며드는 것, 누군가가 다녀간 기척이 따뜻하게 남는 것. 그 조용한 밝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굳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케어가 필요한 불빛처럼 보이던 마음이 어느새 누군가의 길을 비추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우리도 그 빛 안에서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입니다. 계단 불빛이 켜지고 꺼지는 그 단순한 리듬 속에, 오늘도 삶은 잔잔히 이어집니다. 그리고 어둠은 매번 조금씩 물러나, 발끝 앞 두세 칸의 계단을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이 밤에는 괜찮은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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