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9월 23일 07시 02분 발행
우체국 문을 밀고 들어서면 유리문을 타고 들어온 겨울 햇빛이 바닥에 작은 비늘처럼 흩어집니다. 대기표 뽑는 기계에서 나온 얇은 종이가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며, 테이프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이따금 공기 속을 가릅니다. 상자 안 빈틈을 구겨진 신문지로 메우는 손길, 유리병을 감싸는 뽀드득한 뽁뽁이의 질감, 가위 끝이 박스 모서리에서 내는 짧은 숨 같은 소리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마음이 건너가고 있다는 생각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송장 위에 주소를 적을 때 글씨가 조금 더 또박또박해집니다. 주소라는 것은 어쩌면 마음이 길을 내는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울 위에 상자를 올려놓으면 숫자가 반짝이며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어느 순간 멈춥니다. 무게가 정직하게 드러나는 그 순간, 안도에 가까운 평온이 스칟 지나갑니다. 마음의 무게도 이렇게 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곧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저울은 결국 우리 안에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낸 것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옆 창구에 선 어르신의 상자에서는 말린 대추 향이 은근히 새어 나옵니다. 지퍼백에 묶인 뜨개 모자 둘, 편지 한 장이 얌전하게 기대어 있습니다. 어떤 안부는 말 대신 물건을 빌려 길을 찾아갑니다. 상자가 떠나가는 장면을 바라보는 눈빛은 닮아 있습니다. 무엇이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면서도, 그 사이를 채우는 시간만큼은 언제나 알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들은 조용해집니다.
송장이 붙고 도장이 ‘탁’ 찍히는 순간, 상자는 나를 떠나는 동시에 누군가를 향해 가기 시작합니다. 떠남과 도착이 같은 문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됩니다. 한 구석에서 생각 하나가 불쑥 올라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이 말씀이 오늘은 유난히 ‘맡김’이라는 단어의 질감으로 다가옵니다. 잘 싸매어 건네는 일이 약함의 표가 아니라, 신뢰의 다른 이름이 될 때가 있나 봅니다.
저울은 숫자를 세고, 창구는 요금을 계산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영역에서는 때때로 정교한 포장보다 솔직한 마음이 더 안전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골무처럼 손가락을 감싸던 조심성이 어느 순간 내려놓음으로 바뀌는 순간, 안쪽에서 미세하게 울리던 두려움이 긴 한숨을 뱉습니다. 그 한숨이 공기 중에 흩어지는 동안, 누군가의 이름이 마음속 송장에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발송인 칸에는 떨려 쓴 내 이름, 수취인 칸에는 오래 미루어 두었던 말들의 주인공.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길이 한 줄 생겨납니다.
가끔은 우리 안에 작은 우체국이 문을 연 듯합니다. 포장대 위에 가만 놓인 가위처럼, 먼저 잡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일 때가 있습니다. 그 침묵은 누군가를 향해 기울어 있는 마음을 지탱해 줍니다. 저울 위에서 숫자는 무심하게 흐르지만, 하나님 쪽에서라면 저울보다 품이 먼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게를 재기보다 받아 안아 주는 일, 그래서 상자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그 안의 마음이 먼저 읽히는 경험 같은 것.
영수증이 프린터에서 가느다랗게 말려 나오고, 그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면 작은 바람 같은 바스락거림이 함께 들어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소리가 오래 지연되던 말의 발걸음 같아 한동안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걸었습니다. 발송지와 도착지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의 다리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힘이 됩니다. 상자가 움직이는 동안, 내 안의 불안도 함께 라벨을 달고 길을 나서는 듯하고, 어떤 것들은 도중에 내려놓아져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는 듯합니다.
문 앞에 도착할 상자 하나처럼, 앞서 보낸 안부가 누군가의 하루를 잠깐 밝히고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저울 위 숫자가 사라지고 유리문 밖 빛이 서서히 기울어질 때, 주머니 속 영수증이 조용히 말해 줍니다. 길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이제 나머지는 도착이 알려 줄 거라고. 그 말이 마음 한가운데 옅은 온기를 놓고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