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9월 24일 07시 01분 발행
아파트 현관 옆, 작은 경비실 불빛이 이른 시간에도 따뜻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문 앞에 놓인 투명한 상자 안으로 우산 손잡이가 겹쳐 누워 있고, 장갑 한 짝이 접힌 채 고개를 내밀고 있더군요. 유치원 이름표가 달린 모자, 익숙한 브랜드의 열쇠고리, 누군가의 주머니를 오래 돌다 빠져나온 듯한 동전 몇 개까지. 경비원님은 종종 상자를 열어 물건을 가지런히 세우고, 붙어 있는 이름을 소리 내어 천천히 읽으셨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단지 물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의 계획, 약속의 시간, 길 위에서 사라진 마음의 중심 같은 것들도 함께 있었을지요.
분실물은, 돌아갈 곳을 잊지 않습니다. 길을 잃은 것은 보통 우리 쪽입니다. 바쁘던 걸음에 무심히 무엇인가를 떨어뜨리고도 한참 뒤에야 알아차리는 날이 있지요.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던 이름이 있었는데, 막상 전화번호를 누를 용기는 차마 손끝까지 오지 못했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며 미루어 둔 사과, 한 줄 기도 속에 넣으려다 빼버린 그 사람의 사연. 상자 속 물건들처럼, 우리 마음에도 주인을 기다리는 장면이 조용히 쌓입니다.
경비실 창가에 놓인 종이컵 커피에서 김이 천천히 올라오고, 긴 밤을 지키던 신문 더미가 현관 앞에 놓이는 시간. 그 사이사이, 누군가의 발걸음이 멈추어 상자에 손을 넣습니다. 낯익은 촉감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눈빛이 환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실까요. 이름이 불리고, 제자리에 돌아가는 표정. 그 장면을 바라보면, 신앙의 언어가 유난히 크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써 붙잡지 않아도, 우리를 기억하시는 분이 먼저 찾아오신다면 말이지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한 구절이, 그때만큼 또렷하게 들리는 때가 드뭅니다.
사람은 때로 스스로를 분실물처럼 느낍니다. 누구에게 맡겨둔 듯한 웃음, 어느 계절에 깜빡 두고 온 용기,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의 단추 하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마음을 뒤적이다 보면, 의외의 자리에서 조용한 신호가 찾아옵니다. 쓰다 만 편지의 첫 문장,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의 안부, 주머니 속 영수증 끝에 휘갈겨 쓴 단어 하나. 그 작은 실마리들이 손짓하듯 우리를 불러, 다시 자기 자리로 데려다 놓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미뤄 둔 전화가 그럴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멈춰 서서 이름을 천천히 떠올리는 그 시간이 그렇습니다. 큰 힘이 들지 않는 움직임인데도, 마음은 놀랄 만큼 넓어져 있곤 하지요.
분실물 박스에서 장갑 한 짝이 짝을 찾는 순간, 조용한 안도의 숨이 들립니다. 굳이 환호할 필요도 없이, 세계가 조금 제 모습을 되찾는 소리. 오늘이라는 상자에도 그런 소식이 하나쯤 들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길에서 놓친 작은 것들이 돌아오는 일, 그보다 더 깊이, 길을 잃었다고 느끼던 우리가 누군가의 부름 앞에서 제 자리를 다시 기억해내는 일. 그때 마음에 스미는 따뜻함이, 오래 잊고 있던 우리의 이름을 다시 밝혀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