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9월 27일 07시 01분 발행
저녁 무렵, 동네 골목 끝에 작은 수선실이 불을 켭니다. 유리문 너머로 노란 등이 번지고, 재봉틀의 발판이 느리게 오르내립니다. 천 위를 스치는 바늘이 낸 작은 구멍들 사이로 하얀 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풀린 곳을 다시 잇습니다. 카운터 위에는 자르기 전의 실밥이 둥글게 말려 있고, 분홍 분필로 표시한 작은 점들이 옷의 안쪽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옷을 들고 와서 조심스레 펼쳐 보입니다. 무릎이 헤진 작업복, 손목이 닳아 얇아진 가디건, 단추 하나 사라진 겨울 코트. 누군가의 하루가 천 위에 눕혀져 있는 듯합니다.
수선사는 늘 옷을 뒤집어 안쪽부터 봅니다. 겉면에서 보던 얼룩보다, 안쪽의 올이 어디에서 끊겼는지가 중요하다는 듯이요. 겉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던 얇은 상처들이 뒤집히자 또렷해집니다. 손끝으로 살짝 만져 보고, 시침핀을 꽂고, 눈을 가늘게 뜨고 실의 방향을 맞춥니다. 매듭은 밖이 아니라 안쪽에서 묶입니다. 겉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옷의 하루를 붙들어 주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매듭입니다.
오늘 하루를 떠올려 보면, 마음에도 그런 안쪽의 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 한마디가 어긋나면서 느슨해진 사이, 깊게 숨을 쉬지 못해 자꾸만 어긋나는 박자, 내 안의 이유 모를 피로가 쓸쓸하게 소매 끝을 닳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단추 하나가 어느 순간 없는 듯, 익숙하던 자리를 당연히 여기다 놓치기도 합니다. 겉모습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안쪽에서는 조금씩 풀리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오래전 기억 하나가 조용히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밤늦게 식탁 위에서 조용히 바느질을 하시던 모습이요. 라디오에서는 낮은 목소리의 노래가 흐르고, 흰 사발에는 뜨거운 물이 김을 내고, 저는 옆에서 졸린 눈으로 실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순간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바늘이 천을 찌르고 스치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리듬은 집안을 안정시키는 박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뒤집어진 옷은 다시 제 몸을 찾아 제자리에 섭니다. 안쪽에 눌러 놓은 작은 매듭 하나가 하루를 견디게 했습니다.
삶도 그렇게 안쪽에서부터 수선되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어쩌면 바늘이 천을 지나가는 그 조용한 순간과 닮아 있습니다. 짧은 숨 고르기, 상처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그 주변을 부드럽게 만져 주는 손길. 어떤 날은 말이 길지 않아도, 이름을 한 번 부르는 것만으로도 풀린 올이 다시 방향을 찾기도 합니다. 오래 머물지 못하는 마음이라도, 하나님의 시선이 안쪽으로 향할 때, 보이지 않던 엉킴이 조금씩 풀리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주께서는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신다”(시편 147:3)고 했던 그 말씀이, 오늘 밤 유난히 가까이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수선실에서는 늘 시간이 천천히 갑니다. 급하게 꿰면 더 쉽게 풀린다는 것을 손들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듭을 묶기 전, 바늘을 잠시 빼서 방향을 가늠하는 사이, 조용한 숨이 하나 지나갑니다. 우리 하루에도 그런 숨 하나가 필요했구나 싶습니다. 사과가 필요했는데 단어를 고르지 못해 돌아선 순간, 미안함이 늦어져 마음의 천이 얇아진 곳, 기대가 무너져 한쪽이 휘어진 자리. 그 옆에 시침핀처럼 가볍게 꽂아 두는 기도 하나. 오늘이 다 가지 전에, 안쪽에서 마주 앉아 실의 꼬임을 살피는 시간 하나.
겉으로는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매듭은 오래 갑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때 전달되는 체온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따뜻함이 하루를 다르게 만듭니다. 눈에 띄게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뒤집힌 자리에서 묶인 작은 매듭이 내일을 걸어가게 합니다. 돌아보니 하나님은 종종 그렇게 일하셨습니다. 요란한 외침보다, 낮은 곳에서 방향을 맞추고 올을 바로 세우는 방식으로요.
오늘 밤, 수선실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문이 닫히면, 테이블 위에는 잘 뭉쳐진 실뭉치와 작은 분필가루가 남습니다. 그 고요를 떠올리며 마음 안쪽을 한번 어루만져 봅니다. 풀린 자리와 묶인 자리가 모두 나의 얼굴이라는 것을, 그 사이로 지나간 주님의 손길이 내가 알아차린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됩니다. 내일 손에 쥘 옷처럼, 마음도 다시 제 자리에 서 보려 합니다. 그리고 안쪽의 매듭이 오늘을 견디게 했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은혜가 내일의 어깨를 가만히 받쳐 주리라는 생각을, 조용히 품어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