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실의 늦은 등불

📅 2025년 10월 01일 07시 01분 발행

저녁 산책 길에 작은 수선실 앞을 지나쳤습니다. 셔터는 반쯤 내려와 있었고, 유리문 너머로 노란 등을 하나 켜 둔 채 주인께서 정리를 마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식은 증기 냄새가 아주 조금 남아 있었고, 넓은 테이블 위에는 안쪽이 뒤집힌 코트 하나가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분필가루가 천 위에 뿌옇게 내려앉아 있었고, 색색의 실타래는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빛을 가만히 모으고 있었습니다. 발판은 멈춰 있었지만, 한동안 돌았던 리듬이 실내 공기 속에 남아 있었지요.

옷은 안쪽에서 모양을 찾아갑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시침과 시접, 고운 솔기가 몸을 감쌉니다. 누군가 입고 나가면 아무도 그 수고를 못 알아채지만, 몸은 기억합니다. 하루를 지나는 우리의 마음도 그런 모양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름 붙이지 못한 배려, 소리 내지 못한 기도, 금방 잊힐 말 한마디가 안쪽에서 우리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실은 직선으로만 가지 못하고 곡선을 따라 천천히 돌고, 때로는 풀렸다 다시 묶입니다. 그 더딤이 오히려 정확함을 낳습니다. 신의 시간이 있다면, 아마 그런 박음질의 리듬과 닮았을지요.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버스에서 단추 하나가 떨어져 어색하던 날, 동네 수선실에 들렀습니다. 주인 어른은 “금방 됩니다” 하고 미소 지어 주셨지요. 서두르지 않고, 두 번, 세 번 되돌아 박아 단단히 엮어 주셨습니다. 그 단추는 그 뒤로 다시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음의 잃어버림도 그런 되돌아감이 필요했을 때가 있었겠습니다. 오후의 빛이 기울어 갈수록 얇아지는 용기, 모서리가 거칠어지는 말들, 아무렇지 않은 척 견디다가 안쪽 주머니부터 헤져 가던 날들. 누군가의 손길이 보풀 같은 말들을 조심히 모아 다려 주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지요.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3)라는 구절이 조용한 실처럼 떠올랐습니다. 싸맨다는 건 꿰맨 자국을 남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접착이 아니라, 따뜻함이 들고나는 시간입니다. 바늘이 드나드는 찰나엔 따끔함이 있지만, 뒤집어 입었을 때는 단정한 선으로 남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안감이 다시 자리를 잡습니다.

수선실 테이블 위 분필표시는 꾸짖음이 아니라, 더 잘 맞게 하려는 약속처럼 보였습니다. 치수는 옥죄려는 숫자가 아니라, 어깨와 팔이 놓일 자리를 찾아주는 배려였습니다. 실수가 남긴 바늘구멍도 다음 솔기를 이끄는 작은 표식이 되더군요. 밤은 안감처럼 낮을 지탱해 줍니다. 겉에서 드러나는 변화는 크지 않아도, 안쪽에서 은근히 움직이는 은혜가 있습니다. 어깨가 조금 내려앉고, 발걸음이 한 톤 부드러워지는 식의 변화 말입니다.

오늘 밤, 의자를 등받이 삼아 걸쳐 둔 외투의 무게가 방 안 공기를 조금 눌러 놓겠지요. 그 무게 속에서 오늘의 작은 찢김들을 마음속으로 한번 더 더듬어 봅니다.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면 조용히 품고, 사라진 단어가 생각나면 그 자리를 비워 둡니다. 내일 아침 거울 속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안쪽 솔기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선이 우리를 붙들고, 하루가 몸에 조금 더 잘 맞을 것입니다. 침통 한 귀퉁이에 놓인 골무만 한 희망이, 밤새도록 작게 반짝이는 걸 느끼게 되실지도요.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