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03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끝자락에 작은 수선집이 있습니다. 유리문 안쪽으로 재봉틀의 일정한 진동이 퍼지고, 얇은 분필 자국이 천 위에 하얗게 남습니다. 기다란 줄자와 낡은 골무, 색색의 실타래가 낮은 숨을 쉬듯 놓여 있습니다.
그 공간에 서 있으면, 옷이라는 것이 한 번에 완성되는 품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몸에 맞기까지 수없이 달아 보고 고쳐 내려간 바늘땀들이 있습니다. 딱 맞아 보이는 선 뒤에, 보이지 않는 고민과 여유가 함께 숨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의 가장자리가 먼저 해지는 날이 찾아옵니다. 아침에 급히 채워 넣은 단추가 점심쯤 느슨해지고, 다짐은 퇴근길의 피곤 앞에서 풀립니다. 훌륭함보다 편안함을 고르다 보면, 어느 순간 허리선이 흐트러진 것처럼 내 안의 균형이 어긋나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어릴 적 겨울 외투의 소매를 기억합니다. 손이 자라 소매가 짧아졌을 때 어머니는 안쪽에 감춰 둔 천을 살짝 풀어 길이를 늘리셨지요. 그때 처음 ‘시접’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성장할 것을 미리 생각하고 남겨 둔 여유의 폭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안에 그런 시접을 마련해 두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황이 좁아진 듯한 날에도, 마음 어딘가에 아직 펴지지 않은 여유가 남아 있습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3). 누군가 우리를 위해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박음질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한 뼘의 숨을 허락합니다.
수선집의 일은 마무리 매듭으로 완성됩니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조그만 매듭이 옷의 하루를 버티게 하지요. 우리 안에도 그런 매듭이 있습니다. 서둘러 지은 매듭은 피부를 긁지만,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맺은 매듭은 오래 갑니다.
실의 색을 고르는 순간도 떠오릅니다. 티 나지 않게 맞추는 경우가 있고, 오히려 다른 색으로 꿰매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상처를 감추어야 할 때가 있고,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는 때도 있습니다. 어느쪽이든 삶은 다시 입을 수 있는 모양을 찾아갑니다.
수선집의 진동은 도시의 소음과 다릅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한가운데서, 그 진동은 느리고 단정합니다. 한 땀 한 땀, 지나온 날의 구김을 펼치듯 이어지는 호흡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산만해질수록 귓가에는 그 단조로운 박자가 더 명확해집니다.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풀어진 단추 같은 날일지 모릅니다. 말 한 마디가 어긋나고, 생각이 한 곳에 모이지 않더라도, 안쪽 어느 곳에는 아직 펴지지 않은 시접이 남아 있습니다. 너무 빡빡해진 자리에서 살짝 솔기를 풀어 주시고, 필요한 만큼만 다시 맞추어 주시는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머니 안쪽의 해진 천 조각을 하나씩 품고 살아갑니다. 용돈을 넣었다 꺼내던 자리, 걱정을 비밀처럼 접어 넣던 자리, 그 얇은 부분이 먼저 닳아가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작은 천을 덧대면, 주머니는 다시 쓸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흔적이 남아도 괜찮습니다. 거기가 가장 자주 사랑을 드나들던 길이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수선집 앞을 지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되고 있었던 여유를 떠올립니다. 누군가는 재봉틀을 돌리고, 누군가는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시간은 그 사이를 천천히 건너갑니다. 고쳐 입을 수 있는 삶, 다시 입어 볼 수 있는 마음. 그 가능성이 우리 각자의 시접처럼 조용히 펼쳐지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