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06일 07시 01분 발행
버스정류장 맞은편, 간판 글씨가 조금 바랜 작은 수선집에 들른 날이 있었습니다. 코트의 단추 하나가 사라져 빈자리가 눈에 자꾸 걸리던 오후였습니다. 벽시계는 느릿하게 걸렸고, 낡은 라디오에서는 아득한 노래가 조용히 흐르고, 유리 진열장 아래에는 색색의 실과 단추가 바다처럼 눕혀 있었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작은 서랍을 열어 비슷한 빛깔의 단추를 한 움큼 꺼내 주섬주섬 펼쳐 보이셨습니다. 손끝은 주름이 깊었지만, 실을 바늘귀에 통과시키는 순간만큼은 한 치의 떨림도 없어 보였습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바늘이 천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미세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소리였습니다. 실이 당겨질 때마다 천이 조금씩 모이고, 풀려 있던 결이 제자리를 찾아 붙었습니다. 어르신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옷은요, 상처난 자리에서 더 단단해져요. 새 실이 지나가거든요.” 말끝이 땅에 가만히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 한 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종종 빠진 단추 같은 공백이 생깁니다. 뜻밖의 오해, 어렵게 삼킨 사과, 차마 묻지 못한 안부가 작은 구멍처럼 남아 있습니다. 허전함이 바람 들면 더 시려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의 다정한 질문 하나, 미안하다는 메시지 한 줄, 밤늦은 시간 건네는 짧은 기도가 새 실처럼 지나가며, 느슨해진 가장자리를 조금씩 모아 줍니다. 눈에 띄게 화려해지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옷감이 서로 붙듯 우리의 하루도 다시 이어집니다.
기도는 바늘귀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넓은 말보다 작고 또렷한 구멍 하나. 그 조그만 틈을 지나 마음이 한 가닥씩 정리됩니다. 무엇을 먼저 꿰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가도 놓치고, 다시 숨을 고르면 또 들어갑니다. 한 번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자리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는 손놀림으로 우리 안의 헐거운 곳을 알아보시고, 새 실을 고르듯 적당한 색의 위로를 찾아 건네십니다.
수선집 의자에 앉아 있자니, 저마다 가슴 안에 작은 서랍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아직 쓰지 않은 말, 마음이 쑥스러워 미뤄 둔 표정, 미완의 약속들이 단추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삶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그 서랍은 더 자주 흔들립니다. 그래도 서랍을 닫아 버리기보다, 언젠가 맞닿을 자리로 하나씩 꺼내 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선택한 색이 완벽히 같지 않아도, 비슷한 온기가 옷감에 스며들듯 관계에도 스며듭니다.
다 달린 단추를 만져 보니, 그 작은 원이 생각보다 무거웠습니다. 무게가 아니라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이 작은 조각 덕분에 옷깃이 다시 모이고, 가슴이 따뜻해지며, 걸음을 내딛을 때 흔들림이 덜했습니다. 마음에서도 그런 작은 조각이 있음을 배웁니다. 성급한 설명보다 기다림, 정답보다 경청, 옳음보다 온기. 어느 하나가 제자리를 찾으면, 흩어져 있던 하루가 조금 더 단정해집니다.
문을 나설 때, 어르신은 실밥을 한 번 더 훑어 주셨습니다. 그 손길이 축복처럼 느껴졌습니다. 길 위로 저녁빛이 내려앉고, 코트를 여미는 손끝에서 조용한 안도가 들려왔습니다. 단추가 제자리를 찾을 때 나는 아주 작은 소리, 그 소리만으로도 마음은 오래도록 따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