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의 작은 망치 소리

📅 2025년 10월 09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오후, 골목 끝에 조그만 신발 수선집이 있습니다. 문손잡이를 당기면 종이 한 번 울리고, 가죽과 본드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나옵니다. 카운터 뒤에서 주인 어르신은 돋보기 너머로 굽을 살펴보시고, 작은 망치로 똑, 똑, 일정한 리듬을 이어 가십니다. 낡은 라디오에서는 사연 소개가 흐르고, 문 쪽 선반에는 각자의 자리를 기다리는 신발들이 줄 맞춰 서 있습니다. 광택천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빛이 생깁니다. 번쩍임이라기보다 하루를 버텨 낸 표정 같은 빛입니다.

손에 들어온 제 구두는 앞코에 금이 가고 밑창 한쪽이 닳아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말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노트에 제 이름과 날짜를 적습니다. 노트에는 여러 발자국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름 옆에 적힌 동그란 글씨들이 서로 기대어 앉은 모습이 묘하게 다정해 보였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구두들을 차례로 살피다 보니, 발볼이 넓게 늘어난 것, 뒤꿈치가 깊게 패인 것, 끈이 닳아 얇아진 것, 하나같이 주인의 걸음 습관을 닮아 있었습니다. 신발은 우리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나 봅니다. 어디에서 멈칫했고, 어디에서 무게를 더 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도 밑창이 닳습니다. 계절은 마음의 가죽을 살짝살짝 긁고 지나가고, 어느 날엔 하루가 길어서 발을 끌 듯 걸을 때가 있습니다. 새것을 들이는 일보다, 놓치고 지낸 것을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이 더 깊은 힘을 주곤 합니다. 어르신이 바늘귀에 꿰는 왁스 먹인 실은 손끝에서 윤기가 도는데, 마찰을 견디게 하려 실을 단단히 감싸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우리에게도 그런 왁스 같은 온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다툰 마음 사이, 애써 외면한 기억과 현재 사이, 닳아 얇아진 자리에 스며드는 한 줌의 따뜻함. 그 온기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오래 버티게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오래전 누군가의 고백이 수선집 안에서 조용히 되살아났습니다. 발등 가까이에서 켜지는 작은 등불 하나. 앞길을 환하게 바꾸지는 않지만, 지금 밟고 있는 자리의 질감과 높낮이를 드러내 주는 빛. 그 빛 아래에서야 비로소 얇아진 부분이 보이고, 피해야 할 물웅덩이와 건너야 할 턱이 눈에 들어옵니다. 더 빨리 가기보다, 덜 아프게 걸어가게 하는 빛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일을 마치고 되찾은 구두는 발을 넣자마자 익숙한 안쪽을 내어 주었고, 새로 대어진 굽은 걸음을 살짝 곧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닥은 같은 바닥인데, 몸이 그것을 받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 걸음의 각도가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르신은 광택천으로 마지막 한 번을 쓰다듬고, “이제 오래 가겠어요” 하고 말끝에 미소를 얹으셨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까지 닦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수선집 문을 나서며 문종이 다시 한 번 울렸습니다. 바깥 공기는 벌써 저녁빛을 띠고, 선반 위 신발들은 여전히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하루든, 저 선반 어딘가에 잠시 올려 두었다가 다시 신고 나갈 시간이 있겠지요. 오늘의 망치 소리가 아직 귀에서 맴돕니다. 똑, 똑. 너무 크게 울리지 않는, 그러나 분명한 박자. 그 소리에 마음도 함께 다져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 걸어 나온 발자국 소리가 누군가의 방 안에 작은 위로가 되어 남아 있기를, 저도 모르게 그런 바람을 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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