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굽쇠가 건네준 오후

📅 2025년 10월 11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문화센터의 작은 연습실에 들렀다가 피아노 조율사를 만났습니다. 덮개를 걷어 올라간 현들 사이로 얇은 빛이 흘렀고, 조율사의 손끝은 오래 길든 사람의 손처럼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주머니에서 나온 소리굽쇠가 ‘라’의 자리를 열어 주자, 공기가 먼저 반응했습니다. 투명한 울림이 방 한가운데 맺히고, 그 위로 조용히 망치가 닿았습니다. 아주 조금, 눈으로는 거의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만 조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흐릿하던 두 음이 서로에게 다가가 겹쳤습니다. 맞닿는 순간이 오면, 소리는 더 크게 울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산만했던 귀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음이 평평해졌습니다.

조율은 고치는 일이면서, 되돌리는 일에도 가까웠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나 어딘가 느슨해진 장력, 사소한 이탈, 작디작은 어긋남. 하루를 떠올려 보니 그런 것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밀린 답장, 식탁에 남겨진 말 한 조각, 서둘러 끝낸 대화의 끝자락, 그리고 돌아와서야 뒤늦게 떠오르는 표정 하나. 큰 결정은 아니었는데 마음의 음계가 미묘하게 흔들리곤 합니다. 조율사의 손처럼 삶에도 그런 손길이 닿을 때가 있지요. 크게 뜯어내지 않고, 크게 소리 내지 않고, 다만 귀를 가까이 기울여 어긋난 한 치를 되돌려 놓는 일. 기도가 때로는 소리굽쇠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지만, 그것이 내 안에서 기준이 되어 다른 음들을 불러 모으는 순간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조율사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가 번질 때, 그 이름이 호명되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러나 한 대의 피아노가 한 사람의 숨에 맞춰 울 수 있도록, 그 익명의 손이 먼저 다녀갑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이라는 말씀이 조용히 겹쳐지곤 합니다. 보이지 않게 시작하신 일을 보이지 않게 이어 가시며, 때로는 기다림으로 조율하시는 분. 우리에게 들리는 소리보다 먼저, 하나님께 들리는 숨이 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현의 장력이 세면 소리가 맑아지지만, 지나치면 결국 끊어지고 맙니다. 반대로 느슨하면 탁한 울림이 남지요. 사람 사이의 마음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한 마디의 힘이 너무 강하면 상대의 하루가 쪼개지기도 하고, 너무 약하면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한 채 흩어집니다.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일은 의외로 귀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말로 앞서지 않고, 상대의 속도를 가늠하고, 그날의 체온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관계의 나사를 조금만 돌릴 수 있습니다. 연습실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 벽에 기대어 있던 의자의 삐걱임, 복도 끝 자판기에서 나오던 미지근한 물 소리까지도 그날은 낱낱이 음처럼 들렸습니다. 세상은 이미 연주 중이었고, 내 마음의 기준만 달라져도 같은 풍경이 다른 화음으로 묶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손등에 남은 금속의 냄새가 잠시 따라왔습니다. 아마 소리굽쇠를 건네받아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그 ‘라’의 울림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사라진 자리에 이상한 여백이 남았습니다. 오늘 안에서 아직 맞지 않는 음이 하나 떠오르신다면, 그 음의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손길도 함께 떠오르실지 모르겠습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겠지요.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하게. 그 미세한 조정이 누군가의 저녁을 편안하게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어느새 깊은 숨을 고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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