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3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우체국에 들르면 늘 비슷한 냄새가 반겨 줍니다. 종이와 잉크, 테이프의 끈적한 향이 섞여서 작은 창고처럼 마음을 차분히 합니다. 입구 옆 번호표 기계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이 또각하고 뽑히는 소리, 전광판의 숫자가 한 칸씩 넘어가는 조용한 박자, 창구마다 놓인 볼펜의 사용감까지도 오늘을 설명해 주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크기의 상자를 들고 있습니다. 축하를 전하는 포장지, 사과의 마음을 담은 편지, 고향의 맛을 나누는 간단한 먹거리. 상자에 적힌 주소는 모두 다르지만, 그 안에는 비슷한 마음의 체온이 스며 있습니다. 창구 너머 직원이 무게를 재고 우표를 붙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순간,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습니다. “가볍지 않지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종종 저울 위에 올려놓고 싶어집니다. 오늘 말한 한마디의 무게, 붙잡고 있는 걱정의 무게, 끝내 하지 못한 인사의 무게. 너무 가벼워 금세 흩어지지 않기를, 너무 무거워 누군가를 짓누르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우체국 저울의 바늘이 적절한 자리를 찾아 멈추듯, 말과 침묵, 기대와 체념 사이에도 맞닿을 지점이 있음을 배웁니다.
가끔은 반송 도장이 찍혀 돌아온 소포를 받기도 합니다. “수취인 불명.” 선명한 붉은 글자 앞에서 멈칫하면, 내 마음의 주소가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어제의 기대에서 오늘의 체념으로, 오래된 분노의 골목으로, 알지 못하는 사이 이사를 다닐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아시고 찾으시는데, 정작 내가 나를 놓치고 어디쯤 서 있는지 모를 때가 있지요. 주소라 쓰고, 마음의 방향이라 읽게 됩니다.
창구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봉투 위에 한두 줄 더 적습니다. 받는 이의 이름 앞에 존중을 덧붙이고, 보내는 이의 이름 뒤에 조심스레 뜻을 더합니다. 그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기도도 닮아 있음을 떠올립니다. 소리 없이 접힌 종이처럼 손바닥 안에서 작아지는 마음을 들어 올려 건네는 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장 7절). 안내문처럼 늘 보던 문장인데, 어떤 날은 그 문장이 내 안의 전광판이 되어 숫자 대신 평안을 띄웁니다. 맡긴다는 것은 잊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믿음의 운송장 번호를 손에 쥐는 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도, 가는 중임을 아는 일 말입니다.
벼루듯 느린 필체로 주소를 쓰는 노신사, 작은 우표를 스티커처럼 붙이며 웃는 아이, 케첩 얼룩이 묻은 상자를 조심스레 닦아 내는 젊은 아버지. 그들의 손길은 말 대신 뜨겁고, 표정은 조용합니다. 우리 삶의 사연도 이렇게 여러 손을 거쳐 서로에게 닿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오늘 붙여지고, 어떤 이야기는 내일로 미뤄집니다. 문이 닫히는 시각에 마지막 번호표를 쥐고 서 있다가 돌아서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실패가 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상자를 다시 열어 문장을 다듬다 보면, 마음의 주소도 새로 적힙니다. 서두르지 않는 온기는 도착이 느려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체국을 나와 햇살이 눌러 놓은 인도 위를 걸을 때, 오늘 맡길 수 있었던 것과 아직 품에 남겨 둔 것이 나란히 떠오릅니다. 삶은 어쩌면 그 두 가지 사이의 조용한 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당신과 제가 서로의 마음에 정확히 도착할 수 있기를. 그리고 하나님께 맡겨 보낸 모든 안부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제때에 찾아갈 수 있음을, 오늘의 번호표를 쥔 손에서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