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6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병원 대기실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의자에 앉으면 등받이의 차가움이 먼저 등을 만지고, 소독약 냄새가 천천히 호흡을 지나갑니다. 전광판에 번호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같은 곳을 향했다가 이내 각자의 무릎으로 돌아옵니다. 누군가의 손에는 구겨진 봉투, 다른 이의 손에는 미지근한 물이 담긴 종이컵. 말수는 적고, 기다림은 길어 보였지요.
벽면에 작은 수조가 있었습니다. 모터가 내는 낮은 소리와 함께 물이 쉬지 않고 돌았습니다. 인공 수초가 부드럽게 흔들리고, 작은 물고기들이 은빛 등줄기를 번쩍이며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누구도 급하게 헤엄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물은 같은 곳을 돌지만, 같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기다림도 그와 닮아 있어 보였습니다. 자리를 지키지만, 마음은 조금씩 다른 쪽으로 기울고, 어제와 비슷하지만 어제와 같지 않은 숨이 오가니까요.
이름이 언제 불릴지 알 수 없는 시간은 희미하게 긴장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검사 결과가, 다른 이에게는 회복의 실마리가, 누군가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통증의 답이 걸려 있겠지요. 이상하리만큼 그 시간에는 누구도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지만, 각자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글씨로 적혀 있는 듯 느껴집니다. 불릴 때까지의 사이, 그 얇은 간격이 온 마음을 가득 채운다는 사실을, 오늘 새삼 알았습니다.
오래전에 들었던 말씀이 귀 안쪽으로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병원에서 불리는 이름은 차례를 가리키지만, 하나님께 불리는 이름은 소속을 말합니다. 그분의 부르심 안에서 우리는 설명보다 먼저 품을 얻고, 해석보다 먼저 자리를 얻습니다. 같은 의자에 앉아 있던 시간에도, 그 시선 아래에서는 어깨의 굳은 기운이 조금 풀렸습니다. 마치 차가운 손등 위에 누군가의 온기가 조심스레 얹히는 것처럼요.
수조 안 물고기들이 한 줄기 빛에 민감하게 움직일 때, 잠깐 마음이 웃었습니다. 우리도 작은 소식 하나에 크게 요동치는 존재이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꼬리가 물을 밀어내는 규칙을 잃지 않듯, 사람의 마음에도 오래 익힌 리듬이 있습니다. 기도와 숨, 기억으로 엮인 리듬입니다. 기다림 속에서 그 리듬은 가끔 불쑥 돌아옵니다. 어린 날 배운 찬송의 첫마디가 속으로 열리고, 한 번도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았던 간구가 말없이 자리 합니다. 물을 돌려보내는 모터가 눈에 보이지 않듯, 우리를 제자리에 다시 놓아주는 손길도 대부분 조용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대답 없는 메신저 창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 소식을 마음속에서 수십 번 예행연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병원, 집, 버스 안, 어디에서든 호명 사이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 시간은 공백처럼 느껴지지만, 어쩌면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나는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안의 소음이 가라앉아, 이름을 부르시는 목소리가 가장 낮은 톤으로 스며드는 때. 전광판에 불빛이 켜지고 이름이 뜰 때, 놀라움보다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제 이름이 수없이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 수조의 물이 쉬지 않고 돌 듯, 그 사랑도 그쳐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름이 불리기 전의 물빛을 떠올리게 되는 밤입니다. 물은 한없이 투명해져서, 마침내 그 안을 흐르게 하신 분의 손길만 남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그 손길을 알아보는 만큼 조용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