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냄새가 가라앉는 오후

📅 2025년 10월 18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오후, 교회 작은 방의 벽지를 새로 바르는 일을 지켜보았습니다. 도배사가 칼끝으로 낡은 가장자리를 살짝 들어 올리자, 문양이 얇은 껍질처럼 말려 올라갔습니다. 마른 종이가 바스락거리며 떨어질 때, 방 안에는 풀의 은근한 냄새가 퍼졌습니다. 붓이 벽을 쓸어내리는 소리는 낮고 일정했습니다.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먼지 알갱이들이 천천히 떠다녔고, 그 속도가 오히려 시간을 늦추는 듯 보였습니다.

종이 밑에 숨어 있던 벽의 맨살이 드러나자 작은 사연들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테이프가 지나간 흔적, 누구도 보지 않는 연필 자국, 못이 들어갔다 빠진 자리에 남은 둥근 자국. 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지나간 계절들이 저마다의 기색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여, 익숙한 미소와 바쁜 일정로 덮여 있어도 그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흠집과 메모들이 조용히 눌려 있습니다. 그것들이 잘못이라기보다 살아냈다는 증거로 느껴졌습니다.

새 종이를 붙이기 전에 벽은 한동안 생소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도배사는 물걸레로 표면을 다듬고, 습기가 속으로 스며들 때까지 잠깐의 여백을 두었습니다. 그 기다림도 작업의 일부라고 말하듯, 그는 붓을 내려놓고 손으로 벽을 가만히 더듬었습니다. 마음에도 이런 시간들이 있겠습니다. 곧장 덮어버리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잠깐의 정지. 그 정지 안에서 비로소 무언가가 가라앉고, 숨이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기도란 아마 그런 기다림에 가까워, 말을 늘리지 않아도 마음의 결이 고르게 펴지는 때가 있습니다.

새 벽지가 펼쳐지고, 붓이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부드럽게 움직였습니다. 공기 방울이 밀려나며 종이가 제 몫의 평온을 받아들입니다. 은근하고 꾸준한 손길이 지나가면 주름이 사라지고, 문양은 비로소 하나의 표면이 됩니다. 은혜가 가끔 이 붓질과 닮아 보였습니다. 요란하지 않고, 결을 거스르지 않으며, 거기 있던 것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흔들림을 잠재웁니다. 상처와 흔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더는 긁어내지 않아도 되는 자리로 옮겨집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시록 21:5). 이 말씀이 오늘은 큰 선언처럼 들리기보다, 얇은 종이를 타고 퍼지는 물기처럼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새로움이란 모든 과거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빛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기억이 다른 표정을 갖게 되고, 환한 오후가 그 위에 눌리지 않고 내려앉는 일. 그래서 새로움 앞에서 죄책감도 과장된 환희도 필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숨이 고르게 이어지듯, 내면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듯, 그렇게 찾아오는 새날.

작업이 끝나자 방 안은 이전보다 커 보였습니다. 도구가 정리되고 문이 닫히자, 남은 것은 하얀 벽의 고요와 풀 냄새의 여운이었습니다. 아직 무엇도 걸리지 않은 표면은 약간의 쓸쓸함을 품고 있었고, 그 쓸쓸함이 오히려 넓은 여지를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이 자리에 공지문이 붙고, 작은 아이의 웃음이 번지고, 겨울 코트가 잠시 기대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이 비어 있음은 쉬는 숨처럼 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때로는 새 종이를 기다리는 벽 같아 보입니다. 덮어둘 때와 드러나야 할 때가 엇갈리고, 서둘러 붙이면 더 많은 주름이 생깁니다.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손길, 혹은 하늘로부터 오는 알 수 없는 평안이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번져갈 때, 우리 안의 공기 방울들이 조금씩 빠져나옵니다. 과거가 지워지지 않아도, 빛을 받아들이는 표정 하나가 생깁니다.

오늘의 오후가 그러했습니다. 풀 냄새가 가라앉고, 벽의 호흡이 균형을 찾는 시간. 마음 한 켠에서도 그런 조용한 새로움이 내려앉기를 생각해 봅니다. 서둘러 무엇을 걸지 않아도 괜찮은 빈 자리가 하루를 붙잡아 주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이 하얀 방이 잠자코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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