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의 낮은 의자

📅 2025년 10월 19일 07시 01분 발행

평일 오후, 시장 골목 한켠에 붙어 있는 작은 구두수선집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문을 밀자마자 가벼운 종소리가 울리고, 약간 달큰하고 매캐한 가죽약 냄새가 코끝에 닿았습니다. 낮은 천장, 벽에는 오래된 달력이 한 장 뒤로 밀려 있고, 라디오에서는 진행자의 느긋한 목소리가 배경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놓인 나무 의자에는 밤색 약이 묻어 어두운 얼룩을 만들고 있었지요.

수선하는 분은 제 신발을 받자마자 겉면을 훑지 않고 먼저 안쪽을 들춰 보셨습니다. 뒤축 안감이 얇아진 부분, 발가락이 머물다 자주 비벼졌던 자리, 바깥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 먼저 드러났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안쪽이 먼저 닳는다고, 사람도 신발도 그렇다고, 그분은 조용히 말하셨습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맴돌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도 밖으로는 단정한 표정을 지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안감 같은 곳이 먼저 얇아지는 날이 있지요. 참았던 말, 미뤄 둔 슬픔, 익숙한 밝음 뒤에 남은 피로가 보이지 않는 면을 살금살금 갉아먹습니다. 그곳이 먼저 힘을 잃으면 발끝이 조금씩 흔들리듯, 하루의 균형도 알 수 없이 기울어집니다.

수선하는 손은 크지 않았지만 단단했습니다. 닳은 뒤축을 떼어내고, 얇은 가죽 조각을 안쪽에 덧대고, 은빛 못을 몇 개 톡톡 박아 넣는 소리가 가게를 채웠습니다. 망치질은 세차거나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일정한 박자, 사람의 맥박처럼 잔잔한 리듬이었지요. 접착제가 마르는 동안 저는 양말 바람으로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발을 벗고 앉아 있는 시간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 어색함이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무엇이든 고쳐진다는 일에는 원래 기다림이 섞여 있었구나, 그런 생각도 따라왔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 한 곡이 끝나고, 바람 소식 같은 날씨 예보가 흘렀습니다. 벽시계 초침은 작은 원을 성실하게 돌고 있었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앉아 있는 그 몇 분 사이, 마음 어딘가에 지나치듯 얹어 둔 피곤의 이름들이 조용히 들렸습니다. 말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대로 있는 것을 알아주는 시간 하나가 사람을 조금 바꿉니다. 시편에 이런 문장이 떠오릅니다.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그 상처를 싸매신다는 약속이, 소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분명히.

그분은 바닥에 닿는 부분만 새로 갈아 끼우지 않았습니다. 먼저 안에서 흐트러진 모양을 세워 주고, 굽힘이 많은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보강을 넣었습니다. 겉은 그대로인데 발에 전해지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은 모양이 아니라 균형이었습니다. 발목으로 들어오는 작은 안심, 한 발 내딛을 때 흔들림이 덜해지는 감각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고침이라는 것은 때로 이렇게 조용히, 안쪽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선집의 낮은 의자에서 기다리던 시간이 떠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도 이와 비슷한 모양일지 모릅니다. 삶의 바닥을 통째로 바꾸기보다, 닳아 얇아진 마음의 안감부터 붙잡아 주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보강을 덧대시는 일. 그 과정에는 반드시 쉬어가는 여백이 포함되고, 그 여백이 있을 때 비로소 접착이 단단해집니다. 너무 빨리 서두르면 다시 벌어지는 데가 생기니까요. 우리가 원치 않았던 멈춤이 때로는 그런 이유로 허락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듭니다.

수선을 마친 신발을 받아 들고 다시 발을 넣었습니다. 그 온기가 아직 남아 있어, 발등을 감싸며 부드럽게 전해졌습니다. 바닥은 동일한 바닥인데, 느낌은 조금 달랐습니다. 흠집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윤이 올라, 지나온 시간을 지우지 않고도 앞으로 걸을 힘을 덧붙여 주는 듯했습니다. 문을 나설 때 작은 종이 한 번 더 울렸고, 골목의 빛이 복도처럼 길게 이어졌습니다. 다 닳아 버렸던 자리 위에 얇고 단단한 조각 하나가 숨듯 자리하는 오후, 어쩌면 오늘도 우리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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