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1일 07시 02분 발행
보건소 대기실 의자에 몸을 붙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 쥔 번호표는 얇고 가벼웠지만, 그 작은 종이가 오늘의 자리를 정해 주는 듯했습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짧은 전자음이 “띵” 하고 공간을 맴돌았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가 다시 풀렸습니다. 공기청정기의 낮은 소음, 알코올 향이 남은 손등의 차가움, 벽에 걸린 안내문이 말없이 건네는 문장들. 그 속에서 각자의 마음도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찾고 있는 듯했습니다.
옆자리에는 백일을 갓 넘긴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있었고, 몇 칸 건너에는 어깨가 많이 기운 어르신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계셨습니다. 교복 자락을 고쳐 앉는 학생도 보였지요. 서로 다른 나이와 사연이 모여 있었지만, “다음”을 기다리는 마음만큼은 닮아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가벼운 처치를, 누군가는 오래 미뤄 둔 검사를 기다리는 중이겠지요. 기다림은 그렇게, 사소하고도 중요한 문 앞에서 우리를 한 줄로 세웁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생각보다 말이 적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시계를 올려다보게 되고, 한 번 더 번호표를 펼쳐 보게 됩니다. 숫자는 분명한데, 마음은 그 사이에서 흐릿해지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서두르고 있었을까.’ ‘요 며칠 내 마음 안에 쌓인 먼지는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질문들이 살짝 고개를 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누가 답을 내리라 재촉하지 않으니, 질문은 질문대로 잠시 머물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참 자주 숫자 속에 서 있습니다. 대기 순서, 계좌 잔액, 체온, 혈압, 계단 오르기 기록까지 숫자가 우리 하루를 정리해 줍니다. 편리하고 정확하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건넨 표정 하나, 식탁에서 흘려보낸 침묵의 길이, 한숨의 무게 같은 것들입니다.
믿음은 그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온기를 건네는 일과 닿아 있음을 곧잘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라고 하셨지요(요한복음 10:27). 여기서 음성은 전광판처럼 밝은 글자로 뜨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결에 실려 옵니다. 초침이 한 칸 움직이는 소리, 옆자리 가방이 천천히 내려앉는 소리, 진료실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닫히는 소리 사이로 섞여 듭니다. 그때 마음은 ‘나를 부르시는 분이 계시다’는 감각을 아주 조심스럽게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숫자처럼 서두르지 않습니다. 앞질러 가거나 뒤늦게 오지 않고, 오늘의 속도에 맞춰 도착합니다. 어떤 날에는 환하게, 어떤 날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큰 결심을 요구하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한 대답을 품도록 도와줍니다. 고개를 조금 드는 것, 속으로 작은 “예”를 건너보는 것, 자리의 폭을 한 뼘 넓혀 다른 이가 앉을 공간을 남겨 두는 일도 그 대답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번호가 불릴 때 우리는 의자에서 일어납니다. 그 순간의 움직임은 크지 않지만 분명하지요. 마음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오래 눌러 두었던 생각이 조심스럽게 일어나고, 꼭 쥐고 있던 말이 손에서 조금 느슨해집니다. 그 작은 움직임이 우리를 다음 자리로 이끌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조용한 대답이 태어납니다.
문득, 대기실의 숨결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기다림이 되어 주고 있음이 보였습니다. 부르는 소리에 맞춰 서두르지 않으려는 배려, 늦어짐을 향한 이해, 낯선 이에게 건네는 짧은 미소 같은 것들. 그 모든 것이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온 선함을 닮아 있습니다. 실수와 부족도 틈새가 되지요. 그 틈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동안,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배웅받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올 때 자동문이 조용히 열렸습니다. 바깥의 밝은 공기가 어깨에 얹히고, 손에 쥐고 있던 번호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순서는 지나갔지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구나. 그 음성이 이끄는 자리마다, 마음은 조금 더 부드럽고 넓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오늘도 우리는 여러 가지 숫자 속을 오가게 되겠지요. 그래도 가끔, 그 숫자들 사이에서 자신에게만 들리는 이름의 온도를 느끼게 된다면 충분하겠습니다. 그 온기가 우리를 다시 사람 곁으로, 그리고 하나님 곁으로 가까이 데려다준다면, 그 또한 좋은 하루의 다른 이름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