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4일 07시 01분 발행
저녁 무렵, 골목 끝 작은 수선집 유리문 너머로 노란 불이 퍼져 나옵니다. 발판을 밟는 리듬에 맞춰 재봉틀이 낮게 숨을 쉽니다. 한 손에는 바늘, 다른 손에는 분필을 든 주인장의 손끝이 천 위를 살피며 지나갑니다. 옷걸이마다 비닐이 살짝살짝 흔들리고, 길게 늘어진 실뭉치는 작은 구름처럼 카운터 모서리에 기대어 있습니다. 벽에는 ‘기장, 허리, 지퍼, 해짐 보수’라 쓰인 깨알 같은 글씨가 붙어 있고, 그 아래 플라스틱 의자 몇 개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옷들이 순서를 기다리듯 늘어서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이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과 겹쳐 보입니다.
두툼한 코트를 무릎에 올려둔 채 차례를 기다리다 보니, 자주 닳은 자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손이 자꾸 닿았던 주머니 입구, 버스 손잡이를 잡을 때 마찰이 심했던 소매 끝, 앉았다 일어날 때 당기던 옆솔기. 코트는 주인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지나온 겨울의 횟수, 서둘러 걸었던 오후, 멈추고 싶던 밤의 체온 같은 것이 천에 묻어 납니다. 주인장은 별말 없이 어깨선을 눌러 보더니, 분필로 얇은 선 하나를 그어 놓습니다. 새 옷을 만드는 일은 한 번의 큰 결심을 요구하지만, 옷을 고치는 일은 오래 듣고, 오래 만지고, 오래 기다리는 시간이 쌓여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삶도 그럴 때가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크고 빛나는 선택이 아니어도, 살짝 올라간 단을 맞추고, 보이지 않는 안쪽 시접을 덧대는 수선이 우리를 살려 줍니다.
시편의 한 구절이 천천히 떠오릅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3). 오늘 이 방 안에는 의학적 도구도, 화려한 도안도 보이지 않지만, 놀랍게도 고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져서 멈칫거리던 소매가 다시 움직임을 허락받고, 애매하게 길었던 밑단이 발목의 계절을 따라가게 됩니다. 재봉틀 밑을 지나간 회색 실줄기가 솔기 위에 얇은 강처럼 눕습니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실이 몸짓을 바꾸게 합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안쪽 실줄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지 못한 서운함, 어둠 속에서 겨우 붙잡아 본 작은 소망, 누구도 모르게 흘린 눈물의 결이 차분히 이어져 하나의 선을 만들어 줍니다. 수선자리는 완벽히 감춰지지 않습니다. 빛에 비추면 미세한 울림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자국이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 줍니다. 매끈한 표면보다, 조용히 꿰매진 흔적이 오히려 우리를 편안하게 맞이합니다. 관계에도 그런 선이 있지요. 말 한마디로 끝난 사과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오가는 작은 손짓들, 어설픈 웃음과 잠깐의 침묵이 겹겹이 놓여 만들어진 복원선. 완벽히 같아지진 않지만, 더 우리에게 맞게 됩니다.
벽시계가 똑딱거리며 좁은 방의 호흡을 세고, 달력 한 켠에는 ‘목-지연’ 같은 메모가 눌러 쓰여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사람의 체온이 플라스틱을 천천히 데우는 느낌이 옵니다. 유리문 밖 저녁빛이 조금 더 파래질 때, 털실이 풀린 스웨터를 들고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말 대신 눈인사가 오가고, 다시 발판이 움직입니다. 기다림과 맡김이 교차하는 곳, 이 작은 방의 공기가 기묘하게 넉넉합니다. 기도라는 것도 어쩌면 이와 닮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고칠 수 없던 부분을 조심스레 내어 놓고, 내 삶의 치수를 함께 재어 줄 손길을 믿고 앉아 있는 시간. 큰 소리와 눈부신 기적 대신, 바늘이 지나간 자리마다 조용히 연결되는 감각. 그렇게 수선된 옷을 다시 걸칠 때, 걸음이 달라집니다. 같은 길을 걷지만, 옆솔기가 더 이상 나를 붙들지 않습니다. 몸에 맞게 깁어진 자리에서부터 평안이 스며옵니다.
순서가 다가오자 주인장은 실끝을 톡 하고 잘라냅니다. 아주 가는 소리와 함께, 천 사이에 매듭 하나가 숨습니다. 그 순간, 오래 묵혀 두었던 염려 하나도 작게 놓이는 듯합니다. 오늘 밤, 각자의 손에 들린 해진 자리에 이름 모를 손길이 닿아, 다시 움직일 여백이 생겨나는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노란 불 아래에서 시작된 작은 복원처럼, 우리 안의 보폭도 조용히 자기에게 맞아지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아무 말 없이도 충분한 위로가 되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