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점의 조용한 조정

📅 2025년 10월 25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오후, 동네 안경점에 들렀습니다. 문 위에 매달린 작은 종이 가볍게 흔들리고, 유리 진열장 너머로 비친 조명이 손톱만 한 반짝임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렌즈 연마기의 낮은 소음이 일정한 호흡처럼 흘렀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안경사님이 다리를 히터 위에서 살짝 데우더니, 부드럽게 휘어 귀의 곡선에 맞춰 주셨습니다. 코받침은 한 눈금 위로, 나사는 반 바퀴만.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얼굴의 균형을 다시 짰습니다. 안경을 다시 썼을 때 콧등에 닿는 감각이 달라졌고, 세상이 한 걸음 가까이 와 앉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흐릿함도 나름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윤곽이 무뎌지면 상처도 덜 보이고, 모난 말도 덜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선명함이 주는 책임이 있습니다. 타인의 눈빛과 표정을 분명히 보는 일, 그 속의 피곤과 애씀을 알아차리는 일 말입니다. 사도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고 말했습니다(고린도전서 13:12). 이 말이 오늘 안경점의 조용한 조정과 이상하게도 겹쳐 보였습니다. 아직은 완벽히 보지 못하지만,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려는 마음이 사랑의 시작일지 모르겠습니다.

안경사님은 얇은 천으로 렌즈를 천천히 닦으셨습니다. 닦을수록 감춰져 있던 얼룩이 빛에 드러났고, 또 한 번 부드럽게 쓸어 내리니 맑아졌습니다. 삶의 마음도 그와 닮아 있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이유 모를 탁함이 끼고, 그때마다 나무라지 않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더요… 이제 편안하실 거예요.” 그 말에 저는 거울을 보고 살짝 웃었습니다. 안경은 제 얼굴에, 그리고 오늘의 마음에 맞춰지고 있었습니다.

안경은 귀와 코가 함께 나누어 지탱하는 물건이었습니다. 한쪽으로만 무게가 쏠리면 금세 자리를 잃습니다. 관계도 그러했습니다. 커다란 결심보다 미세한 조정이 오래 갑니다. 말 한마디의 온도, 다섯 초의 쉼, 고개 끄덕임 하나, 마음속에서 한 발짝 물러서 주는 넓이. 밀리미터의 이동이 편안함을 바꾸듯, 아주 작은 배려가 하루의 초점을 가릅니다.

다시 쓴 안경으로 밖에 나와 보니, 버스정류장 유리 뒤 노선도의 작은 숫자들이 또렷했습니다. 숫자 하나하나가 자리에서 깨어나 제 존재를 알리는 듯했습니다. 그 선명함이 마음 안쪽까지 번져 들어왔습니다. 문제는 여전한데 방향이 분명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초점이 맞으면 빛이 먼저 들어오고, 빛이 들어오면 사물들이 저마다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말이 줄어드는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면, 마음의 렌즈를 누가 닦아 주는 듯했습니다. 그 손길의 온도까지는 다 알 수 없어도, 닿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야가 환해지는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라는 한 구절이 오늘따라 오래 머물렀습니다. 언젠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뵐 그때, 이 잠깐의 흐릿함도 사랑을 배우는 연습이었다는 걸 알게 될까요.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자 본문 사이에 끼워 둔 얇은 영수증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종이 한 장이 오늘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안경이라는 이름의 도구를 통해 마음의 도수를 다시 맞춘 오후였습니다. 아직 서투르지만, 선명해진 만큼 더 천천히, 더 부드럽게, 서로의 얼굴을 읽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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