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02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통로 끝 작은 수선집에 들렀습니다. 초록 유리문에는 손으로 쓴 ‘수선’ 글씨가 기울어져 있고, 문턱을 넘으면 따뜻한 온기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다리미에서 오른 김이 천천히 올라와 공기를 부드럽게 덮고, 형광등의 낮은 윙 소리가 방 안을 둥글게 감쌉니다. 라디오는 먼 곳의 소식을 소곤거리듯 전하고, 천장 따라 도는 옷걸이 레일이 딸깍딸깍 규칙적으로 움직입니다. 하얀 분필로 그어진 표시, 나무자와 쪽가위, 색색의 실타래들이 단정하게 앉아 있고, 은빛 골무가 손가락 마디에서 번들거립니다.
연세 지긋한 주인어른이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박음질 소리가 두두둑 쏟아집니다. 뒤집어 놓은 코트에서는 겉감과 속감, 심지의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바늘끝은 바람 한 올 새어나가지 않게 솔기 속을 부지런히 오갑니다. “겉에서 보면 멀쩡해도, 속이 풀려 있으면 금세 흐트러져요.” 주인어른의 말이 박음질 소리 사이로 얇게 스며듭니다. 눈에 띄는 수선은 많지 않습니다. 힘을 주는 일은 대체로 안쪽에서 이뤄집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의 솔기가 풀릴 때가 있습니다. 누구의 말 한마디가 오래 걸려 실밥처럼 삐져나오고, 서둘러 건넨 대답이 가시처럼 남을 때가 있습니다. 바깥으로는 단정해 보였는데, 속면이 흐트러져 하루의 모양이 자꾸 틀어질 때가 있지요. 수선은 그런 곳을 향합니다.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결을 촘촘히 잇고, 약한 부분에 힘을 고르게 분배합니다. 믿음이 주는 위로도 종종 이 결을 닮습니다. 요란한 장식 대신, 금방 잊히는 겉치레 대신, 안쪽이 단단해지는 느린 변화 말입니다.
사람들은 손에 든 옷을 조심스레 올려두고 이름표를 답니다. 맡김에는 시간이 섞인다는 걸 압니다. 옷은 이곳에 남고,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섭니다. 신기하게도 마음 한켠이 가벼워집니다. 더 이상 내 손에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때문일지 모릅니다. 기도도 이와 닮았습니다. 말끝에 이름표를 달아 조용히 놓아두는 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리라.” 약한 곳을 더 조심스레 만지시는 그분의 손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기다리는 동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다리미에서 번지는 따뜻한 냄새를 맡습니다. 스팀이 공기 속에 섞여 쌀뜨물처럼 뿌옇고, 그 사이로 바느질 소리가 숨처럼 이어집니다. 분필 가루가 어깨에 살짝 내려앉고, 실이 손등을 스치며 지나갑니다. 저만치서 누군가는 옷깃의 찢어진 부분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사정을 얹습니다. 오래전 밤, 누군가 식탁 모서리에 앉아 바짓단을 줄이던 모습이 겹쳐집니다. 말은 적었고, 손은 부지런했지요. 사랑은 때로 이런 모양이었습니다. 소란보다 집중, 설명보다 손길.
며칠 뒤 다시 찾았을 때, 레일이 딸깍 소리를 내며 제 차례를 내어줍니다. 얇은 종이 태그에 적힌 이름이 반갑고, 가장자리의 실밥이 정리된 곳에서 작은 빛이 납니다. 어깨선이 제 자리를 찾아 몸과 화해하고, 걸음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속이 받쳐주니 하루가 덜 기울어집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바깥을 크게 바꾸지 않으시더라도, 우리 안쪽의 흐트러진 결을 곰살맞게 맞추어 주십니다. 발목에 걸리던 자잘한 헛디딤이 줄어들고, 마음의 옷깃이 고요히 닫힙니다.
오늘 저는 마음속 느슨해진 부분을 떠올립니다. 금방 달라지지 않는 일들이 여럿이지만, 바늘땀 하나가 다음 땀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밤이 깊어도 바늘귀는 작고 손길은 선하며, 내일 아침 등에 닿을 옷의 온기처럼 보이지 않는 수선이 우리를 감쌀 것입니다. 그 조용한 박동을 따라, 저마다의 속면에서 천천히 괜찮아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