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상자 위의 오후

📅 2025년 11월 04일 07시 02분 발행

식탁 한가운데 작은 틴 케이스가 놓여 있습니다. 뚜껑을 열자 단추들이 굴러 서로의 어깨를 스치며 소리를 냅니다. 자개빛이 어딘가 벗겨진 것, 네 개의 구멍이 단정하게 뚫린 것, 오래된 외투에서 딸려온 듯 연갈색의 둥근 것. 햇빛이 비스듬히 기울어 단추마다 작은 눈동자처럼 반짝이고,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그 구멍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듯합니다.

생각해 보면 단추란, 없어져서야 비로소 존재를 고백하는 물건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옷깃을 꼭 여며 주다가도 어느 날 하나가 빠지면, 몸의 한쪽이 괜스레 허전해지고 걸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집에 돌아와 임시로 실핀을 꽂아 보지만, 그날의 어색함은 끝내 숨지 않습니다. 그렇게 잃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미루어 둔 안부 하나, 들었다고만 고개 끄덕였던 사연 하나, 별것 아니라 여겼던 작은 웃음 하나. 단추처럼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던 것들이었습니다.

손끝으로 단추를 굴리다 보니, 가장자리의 얇은 흠집들이 지나간 계절을 말합니다. 말없이 떨어져 나간 실밥의 흔적, 서둘러 달던 매듭의 거친 결, 그 속에 담긴 어떤 하루의 무게. 옷의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서 매듭 하나가 지켜 준 안정으로 우리의 모습이 유지되었을 때가 많았습니다. 한 줄의 실이 지나간 작은 구멍들처럼, 누군가의 말과 침묵이 내 마음을 통과해 한때의 겨울을 버티게 했던 날들을 떠올립니다.

케이스 안의 단추를 세어 칸칸이 나누어 담다가,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는 그 고요한 약속. 누군가는 단추조차 아깝다 여기지 않고 수를 헤아리듯 우리의 작은 숨, 허탈한 미소, 어정쩡한 하루의 빈틈까지 이미 알고 계셨다는 뜻 같아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거창한 말보다 밥숟가락의 미미한 소리, 화분 흙에서 나는 습기, 손바닥에 묻은 비누 향 같은 것들이 오늘의 우리를 이루듯, 은혜도 그러한 모양으로 다가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느질 상자에는 여분의 단추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같은 모양, 같은 색을 하나쯤 더 붙여 두는 이유는, 언젠가 비어질 자리를 미리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삶에도 그런 여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 번쯤 숨을 길게 내쉬는 시간, 누군가의 말 끝까지 머물러 주는 마음, 필요 이상으로 팽팽하지 않은 매듭. 매듭이 너무 세면 옷감이 상하고, 너무 느슨하면 금세 풀리듯, 우리 마음의 결도 어느 지점에서는 조금의 여유로 지켜져야 오래 갑니다.

오늘 케이스 속 단추들을 자리에 돌려 놓으면서, 언젠가 잃어버릴 것을 미리 두려워하기보다 이미 함께 지나온 장면들을 천천히 더듬어 봅니다. 빠진 단추 하나로 외투의 쓰임이 끝나지 않듯, 마음의 한 귀퉁이가 텅 빈 날에도 삶은 여전히 우리를 품에 넣습니다. 자리를 지키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지나면, 뜻밖의 여분이 안쪽에서 손을 들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작은 바늘과 실로 다시 이어지는 사이가, 전보다 더 단단하고 부드러운 모양을 닮아 있기도 합니다.

여분의 단추가 달린 옷은 오래 갑니다. 우리도 그러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식탁 위를 굴러 다니던 작은 원들을 상자에 거두어 두며, 누군가의 옷깃을 조용히 채워 줄 한 알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이 오후의 빛이, 그 기다림 위로 얇게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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