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한 장의 온기

📅 2025년 11월 05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낮,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밝은 형광등 아래로 번호표가 조용히 넘어가고, 창구마다 사람들의 사연이 봉투에 담겨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소포 상자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주름진 메모를 보고 주소를 옮겨 적고 있었습니다. 살짝 마른 종이 냄새, 묵묵히 움직이는 계산기 소리, 그리고 저울이 “삑” 하고 무게를 읽는 순간의 정적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저도 얇은 엽서 하나를 저울 위에 올렸습니다.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숫자를 확인하고 말했습니다. “가볍네요. 우표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그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충분합니다’라는 말. 무게가 가볍다고 해서 사연이 가벼운 것은 아니고, 두툼하다고 해서 마음이 무거운 것도 아닐 텐데, 그날 제 귀에는 오랜 안부처럼 들렸습니다. 그래,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어쩌면 하루를 버틴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그런 판정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우표를 떼어 엽서 모서리에 바르게 붙였습니다. 손끝에 닿는 풀의 얇은 끈기가 따뜻했습니다. 우표는 작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장치 하나가 종이와 길을 이어 줍니다. 붙여진 우표는, 이 글자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내어 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우표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다정한 말, 들키지 않는 손길, 이름 없이 바쳐지는 기도. 작지만 길을 열어 주는 무언가가 있어 우리는 다시 도착지의 방향을 알아봅니다.

간혹 편지는 돌아오기도 합니다. ‘수취인 불명’이라는 도장이 찍혀서. 마음의 편지들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오래 간직한 설명, 미뤄 둔 사과, 건네지 못한 감사. 때를 놓쳤거나, 주소가 바뀌었거나, 아직 받을 준비가 안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조용히 봉투를 다시 만져 봅니다. 글자 사이의 숨을 천천히 읽습니다. 돌아온 편지라고 해서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배달되지 못한 마음도 우리 안에서 다른 모양의 길을 냅니다. 더 천천히, 더 깊게.

성경은 “너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태복음 10:30)라고 말합니다. 무게를 잴 때마다, 그 문장이 떠오릅니다. 하늘은 우리의 사연을 그램으로 재지 않으시겠지요. 어느 날은 침묵 하나가 돌덩이처럼 무겁고, 어느 날은 짧은 안부가 산들처럼 넓습니다. 그 넓고 깊은 헤아림 앞에서, 부족과 과잉 사이에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충분합니다’라는 말이, 마치 보이지 않는 우표처럼 우리 이마에 살포시 붙는 것 같습니다.

번호표가 한 칸 더 앞으로 당겨질 때마다 누군가의 기다림이 해소됩니다. 그 기다림에도 각자의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간, 새로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 오래된 오해가 풀리기를 바라는 시간. 창구 너머 직원의 차분한 손놀림이 그 시간들을 한 장 한 장 도장 찍어 줍니다. 오늘의 날짜가 파란 잉크로 선명해집니다. ‘지금 여기를 통과했습니다’라는 표시처럼.

우체국 문을 나서며 봉투를 한 번 더 어루만졌습니다. 글자는 얇고 종이는 가벼운데, 이 작은 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환히 비출 수도 있겠지요. 어떤 날은 우리의 말이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릴지 모릅니다. 그래도 길은 열려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길잡이들이 함께 걷습니다. 우표 한 장의 온기처럼, 오늘 우리 마음에도 조용히 붙은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온기가 발걸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동안, 우리가 써 내려간 조용한 글자들이, 각자의 주소를 찾아 천천히 건너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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