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18일 07시 02분 발행
오전의 병원 대기실은 낯선 차분함으로 가득합니다.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고, 벽 시계의 초침이 한 칸씩, 조용히 칸막이를 넘어갑니다. 전광판의 숫자는 차례를 알리고, 바퀴 달린 침대가 복도를 지날 때마다 바닥에서 낮은 마찰음이 일어납니다. 손에 쥔 번호표는 얇은 종이인데도 꽤 무게가 있는 듯합니다. 모서리는 금세 구겨지고, 손끝엔 땀이 조금 맺히지요. 서로의 표정은 말을 아끼지만, 여기 있는 모든 손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얹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은 그 기다림이 기대로 채워지고, 또 어느 날은 같은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늘어집니다. 좋은 소식을 바라는 마음과, 혹시 모를 결과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이 한 몸 안에 묵묵히 동거합니다.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 평소 잘 들리지 않던 내 호흡이 조금 또렷해지고, 심장의 리듬이 이름을 부르는 종소리처럼 가까이 다가옵니다. 시간이 이렇게 느려질 때, 삶이 내게 천천히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누구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주었는지가 차분히 떠오릅니다.
옆자리의 어르신이 종이컵 물을 건네며 “목축이세요” 하고 속삭입니다. 그 짧은 문장에 담긴 체온은 전광판보다 더 확실한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번호는 질서를 지키게 하고 효율을 만들어 주지만, 마음을 건네는 일에는 언제나 이름이 먼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간호사가 문을 열며 “다음 분 들어오세요” 하고 말할 때보다, “OOO님” 하고 이름을 불러줄 때, 사람들은 조심스레 일어나며 얼굴의 경계가 조금 풀리는 것 같습니다. 이름은 나를 하나의 숫자에서 데려와 나라는 자리로 돌려놓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오늘의 대기실에서 숫자가 내 차례를 가리켰다면, 그분의 마음에서는 오래전부터 내 이름이 불리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부르심은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합격과 낙제를 가르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이미 소중하다고 말해 줍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기다림은 단지 검진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무심코 지나온 하루의 빛과 그림자를 천천히 정리하는 작은 방 같기도 합니다.
한쪽 구석, 벽에 붙어 있는 안내 종이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머뭅니다. 잠시만, 그러나 그 잠시가 길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 길어진 틈새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을 듣고, 자기 마음의 모서리를 살짝 만져 보게 됩니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 가방에서 껌 한 조각을 꺼내 건네는 일, 번호표를 툭툭 펴서 다시 무릎 위에 올려놓는 일. 그런 사소함이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줍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기다림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작은 견고함이 생기곤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게 되었고, 그 연약함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번호표는 종이통에 버려지겠지만, 손끝에 남는 감촉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불린 것은 내 차례였지만, 실은 내 이름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도 그렇게 내 이름이 조용히 불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자꾸만 가슴을 데웁니다.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섭니다. 자리에 남은 우리도 각자의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합니다. 언젠가 또 다른 대기실에서, 다른 색의 번호표를 쥐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에도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만은 오래 남아 우리를 단단히 묶어 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종이 한 장이, 이상하게도 삶 전체의 결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이름이 불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닿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