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19일 07시 01분 발행
아직 가로등이 희미한 시간, 동네 빵집 유리문 안쪽이 먼저 깨어 있습니다. 김이 오른 창을 사이에 두고 보면, 반죽이 고요한 산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거대한 볼에 기대어 쉬는 반죽은 흔한 밀가루 덩어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과 기다림이 스며든 생명처럼 보입니다. 믹서가 멈추고, 반죽을 접어 올리는 손의 동작이 한 박자 느리게 이어집니다. 속도를 자랑하지 않는 움직임, 빠르게 만들 수 없는 향기가 그 사이에서 자랍니다.
제빵사는 온도를 자주 확인합니다. 너무 뜨거우면 금세 질식하듯 꺼지고, 너무 차가우면 잠든 듯 일어나지 않습니다. 온기와 시간, 보이지 않는 교감이 반죽을 살립니다. 작은 이스트가 반죽 전체에 말을 겁니다. “일어나자.” 큰 소리는 아니지만, 곧 반죽의 표면이 미세하게 들썩이고, 내부에 공기길이 생깁니다. 손끝으로 그 길을 느끼듯, 제빵사는 기다림을 조금 더 길게 잡습니다. 마음속 어떤 일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러 서두르면 뜯겨 나가고, 포기하면 가라앉고, 그러나 따뜻함에 기대면 서서히 모양을 찾는 일.
성경은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넣어 온통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태복음 13:33)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새벽의 빵집에서 떠올리면, 천국이 멀리서 번쩍이는 별처럼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고 보이지 않는 기미로, 우리 안 깊은 곳부터 부풀어 오르는 어떤 숨. 눈으로 보지 못해도, 코끝에 닿는 향으로 먼저 알아차리게 되는 낌새. 마음 한 칸이 미세하게 넓어지고, 오래 묶여 있던 말이 풀리고, 서운함과 고집이 이완되며 여유를 내어 줍니다.
첫 식빵을 오븐에서 꺼낼 때의 소리가 있습니다. 바삭한 껍질이 금 가듯 미세하게 울리고, 칼이 들어가면 결 사이로 따뜻한 수증기가 빠져나옵니다. 그 결 사이사이, 빈틈이 부드러움을 만듭니다. 지나온 하루가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은 이유가 부끄럽지 않게 느껴집니다. 채우지 못한 자리에서 오히려 향이 배어나오고, 숨이 흐릅니다. 관계도 그렇게 부드러워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려는 욕심보다, 빈틈을 허락하는 온기가 더 큰 힘을 가지곤 합니다.
반죽을 만지던 제빵사의 손등에는 자잘한 상처와 굳은살이 보입니다. 오래 쌓인 시간의 표정이 손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손에도 각자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흔들려버린 날과 견뎌낸 밤, 말없이 지켜낸 약속들이 체온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 체온이 닿은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살아납니다.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친절이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돌아오고, 오래 묵은 슬픔이 새 공기와 섞이며 빛을 바꿉니다.
가끔은 변화가 없는 듯 보입니다. 반죽이 평평해 보이는 순간이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내부에서는 천천히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포가 서로 길을 내고, 아주 작은 움직임이 방향을 바꿉니다. 우리 안에서도 말하지 못한 기도, 무심히 흘린 눈물, 남에게 들키지 않은 미소 같은 것들이 누룩처럼 퍼져 나갑니다. 당장은 모양이 없지만, 시간이 스스로의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새벽 골목을 나와 문틈에서 새어 나온 따뜻한 공기를 한 번 더 맡습니다. 아직 해는 오르지 않았지만, 마을에는 이미 굽는 냄새가 번지고 있습니다. 눈앞에 드러난 변화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오르는 온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마음도 어쩌면 발효 중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결과를 증명하지 않아도, 향으로 먼저 알려지는 날이 있습니다. 삶이 우리를 급히 몰아붙이던 어제와 달리, 이 새벽은 기다림이 일하는 시간임을 보여 줍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 안쪽이 조용히 부풀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