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20일 07시 01분 발행
점심 전, 동네 우체국에 섰습니다. 번호표 기계가 가볍게 종이를 뽑아 주고, 전광판의 빨간 숫자가 한 칸씩 넘어갑니다. 저울 위에 올라가는 작은 상자에서 비닐 냄새가 나고, 소인이 찍히는 소리와 고무도장이 책상에 닿는 소리가 잔잔하게 섞입니다. 누군가는 송금 용지를 천천히 채우고, 누군가는 고무줄로 묶인 엽서 묶음을 풀어 봅니다. 유리창 너머 직원의 미소가 얇은 칸막이를 통과해 퍼지면, 기다리는 자리에도 조금의 온기가 돕니다.
주소를 적는 일은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일과 닮았습니다. 받는 이의 이름을 바르게 쓰고, 동과 호수를 정확히 붙잡아 줍니다. 그 한 줄이 흔들리면 길을 잃습니다. 마음속에도 주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전하려 했던 문장, 할 수 있다 하면서도 미뤄 둔 안부, 오래 눌러 놓은 미안함. 보낼 때를 놓쳐 접어 넣어둔 메모처럼, 서랍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표에 가볍게 숨을 불어 촉촉함을 더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접착 뒷면을 떼어 붙입니다. 방식이 달라져도, 우표 한 장의 무게는 여전히 마음을 건너게 합니다. 작은 사각형 하나가 길을 열어 줍니다. 보내기로 정하는 순간, 보내는 사람도 조금 달라집니다. 기다림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도착을 기도하는 마음을 얹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또렷이 부르는 일이 있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졸업식장에서, 혹은 우체국 창구에서. 이름이 불릴 때,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주소보다 더 분명한 호명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기도는 그 부름에 대한 회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을 잃은 말을 모아, 도착지를 다시 적어 보는 일입니다.
때로는 편지가 돌아옵니다. 수취인 불명, 주소 이전, 부재중. 삶에도 그런 표기가 붙을 때가 있습니다. 다가갈 수 없고, 닿지 않고, 응답이 늦습니다. 그래도 돌아온 봉투에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구겨진 모서리, 여러 번 바뀐 경로의 자국, 그리고 여전히 읽히지 않은 용기 한 장. 그 사이에서 마음은 조금 단단해지고, 다음 주소를 더 또렷하게 적게 됩니다.
우체국을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특별하지 않은 회색빛인데도 묘하게 넉넉합니다. 주머니 속 번호표가 가볍습니다. 오늘 쓴 주소가 틀리지 않았는지, 받는 이의 이름을 온전히 불렀는지,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게 됩니다. 누군가의 문 앞에 조용히 내려앉을 한마디가, 먼 길을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래 머뭅니다.
우리 안에 아직 붙이지 못한 우표가 조금씩 있겠다 싶습니다. 감사의 한 줄, 사과의 한 마디, 오랫동안 쓰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짧은 안부. 오늘이라는 봉투가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적어 둔 작은 글씨가 떨리지 않고,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동안, 보낸 이의 마음도 함께 길을 배워 가는 중입니다. 도착했다는 조용한 소식이 언젠가 들리면, 그때에야 완성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여전히 불러 주시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부름에 고개를 들게 되는 어느 한낮의 우체국처럼, 삶도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