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 남은 낮의 무늬

📅 2025년 11월 27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오후, 설거지 물이 미지근할 때쯤 도마를 세워 말리곤 합니다. 물기를 털어내려 살짝 기울이면, 칼자국 사이에 아주 작은 물웅덩이들이 고여 반짝입니다. 오늘 썰어지던 것들의 빛깔이 거기 스며 있는 듯합니다. 초록은 파의 향을, 희끗한 자리는 마늘의 매운 기운을, 붉은 기운은 토마토의 단맛을 떠올리게 하지요. 나무결은 하루의 손길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소리 내지 않고, 다투지 않고, 지나간 칼의 발자국만 차분히 남깁니다.

도마를 바라보고 있으면 때때로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우리 삶도 이 나무처럼요. 누구에게 밥이 되고 힘이 되려고 분주히 썰고 다지던 시간들 사이에 작은 홈이 새겨집니다. 말 한마디를 삼킨 자리, 답장을 늦춘 자리, 피곤해서 내어주지 못한 자리, 혹은 용기를 내어 건넨 따뜻한 말의 자리까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남아 있는 낮의 무늬들입니다. 어떤 자국은 깊어 물이 오래 고이고, 어떤 자국은 얕아 금세 마릅니다. 깊다고 늘 좋지도, 얕다고 늘 나쁘지도 않은, 그저 우리가 살아냈다는 증거로 남습니다.

가끔 도마에서 나는 냄새가 신경 쓰일 때가 있습니다. 소금으로 문지르면 금세 누그러지지요. 소금은 거칠지만 상하지 않습니다. 염기만 남기고 조용히 물에 지워집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눈물에도 소금기가 있습니다. 오늘 묵은 마음이 있다면, 말없이 흘러나온 눈물 한 방울이 그 마음을 씻어 준 날이 있었던 듯합니다. 울음이 해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 속 깊은 홈에 고여 있던 것을 조금 비워 내게 하니까요. 비워진 자리에 공기가 통하면 냄새는 가벼워지고, 결국 마릅니다. 그러고 나면 다음 식사를 준비할 힘이 다시 생깁니다.

해가 기울면 도마 위엔 마른 자리와 젖은 자리가 함께 보입니다. 오늘 하루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힘껏 해낸 일과 미처 다하지 못한 일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미완의 목록이 마음 구석을 찌르더라도, 잘라낸 자투리들이 모여 국물이 되듯, 남겨진 것에도 쓰임이 있습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한복음 6장 12절)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버려진 듯한 마음의 조각, 흘려놓은 시간의 조각, 말끝에 떨어진 미안함의 조각을 살며시 모아 본 날들에, 이상하게 더 깊은 맛이 배어들었습니다. 큰 기적은 아니어도, 저녁 한 끼를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여러 해 쓴 도마는 처음보다 둥글어집니다. 모서리는 손에 맞게 닳고, 칼자국은 겹쳐지며 색이 진해집니다. 누군가는 낡았다고 말하겠지만, 여기에는 함께 먹고 웃고 울던 저마다의 계절이 깃들어 있습니다. 닳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 아름다워지는 것이 있음을 이 나무판이 조용히 알려주는 듯합니다. 삶의 무늬도 그러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완벽히 매끈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깊어진 흔적만큼 더 넓게 받쳐 주고, 더 부드럽게 품어 주기도 하니까요.

오늘의 물기를 훌훌 털어 놓고 도마를 서늘한 곳에 기대어 둡니다. 금세 마르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나무는 다시 숨을 돌립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루를 기대어 놓을 자리가 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요란하지 않은 자리, 조용히 말릴 수 있는 시간. 그 사이에 낮의 냄새가 빠지고, 색은 차분히 가라앉고, 남은 무늬가 더 또렷해집니다. 내일의 손길을 맞을 준비가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도마 위에 고여 있던 작은 물방울이 사라질 때, 빛이 얇게 번집니다. 오늘이라는 나무판에도 그런 빛 한 줄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분명 지나갔을 그 빛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한켠에 남은 조각들로 끓일 수 있는 따뜻한 국물 같은 저녁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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