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의 조용한 불빛

📅 2025년 11월 29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오후, 동네 작은 수선집에 들렀습니다. 민트색 문을 밀고 들어가니 다리미에서 오른 따뜻한 김이 허공에 얇게 퍼지고, 재봉틀 발판이 발끝에서 규칙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바늘꽂이에는 알록한 핀이 작은 고슴도치처럼 모여 서 있었고, 유리 진열대 아래쪽에는 색이 다른 실타래들이 계절처럼 층층이 놓여 있었지요.

옷자락을 내어놓고 기다리는 동안, 주인장께서 헝겊에 분필선을 긋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흰 가루가 조심스레 내려앉는 자리마다 ‘여기까지’라는 속삭임이 생기더군요. 그 선은 꾸짖음 같지 않고, 무릎을 꿇은 손이 건네는 조용한 제안 같았습니다. 서둘러 자르지 않고, 두 번 세 번 다시 재는 그 멈춤이 인상 깊었습니다. 멈춤이 늦어짐이 아니라, 다치지 않게 길을 찾는 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하루도 옷처럼 가장자리부터 닳아갑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이 튀어나오고, 다짐은 서랍 속에 밀려 들어가고, 마음의 밑단이 올올이 풀릴 때가 있지요. 그런데 수선은 이상하게도 꾸역꾸역 메우는 일이 아닙니다. 핀으로 고정하고, 안쪽으로 한 번 더 접어 감추어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 실을 건너가게 하면서 겉면을 살리더군요. 겉면의 매끈함은 안쪽의 오래된 인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 작은 손놀림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수선집에는 버리기엔 아까운 것이, 잊기엔 사연이 많은 것이 모입니다. 선물로 받았던 셔츠, 오래 입어 엉덩이가 얇아진 바지, 손목에 딱 맞던 단추가 유실된 코트. 사람들은 새것을 살 능력이 있어도, 때로는 오래된 것의 시간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저는 그 마음이 참 좋습니다. 지나온 계절을 쓸어내리듯 어루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늘이 같은 자리를 두어 번 되짚어 지나가는 박음질을 보며, 돌아감이 후퇴가 아니라 단단함을 위한 절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같은 기도를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되돌아감이야말로 힘을 묶어주는 뒷매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서 어수선함을 붙들어 주는 ‘한 땀’ 말입니다.

수선 중이라는 작은 종이표가 옷깃에 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뜻이겠지요. 문득, 우리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그 표가 달려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쳐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손을 대지 않고 기다려줘야 하는 구간이 있으니까요. 그 구간을 알아봐 주는 시선이 사람을 살립니다.

분필선은 용무를 마치면 손바닥으로 툭툭 털어 사라집니다. 그 흰 흔적이 가게 바닥에 가볍게 눈발처럼 내려앉다가 이내 없어졌습니다. 어떤 경계는 그렇게 잠시 있다가 사라지기 위해 생기는 것이겠지요. 길을 잃지 않도록 돕다가, 목적이 이루어지면 조용히 물러나는 안내. 마음에도 그런 선이 그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 말 한마디를 허락해 주는 선 말입니다.

작은 라디오가 잔잔한 노래를 흘려보내는 사이, 재봉틀은 자리를 바꾸지 않고도 많은 길을 갔습니다. 한 자리에서 길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되었습니다. 새로운 장면이 없어도, 같은 집과 같은 직장과 같은 식탁에서도, 실을 이어가듯 하루를 새로 엮을 수 있겠지요.

그분은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3). 수선집의 조용한 손길을 보며, 저는 이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큰 손짓보다는 자주 보이지 않는 배려로, 삶의 안쪽에서 끊어진 결을 이어주시는 분.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혜가 안감을 받쳐주듯, 보폭을 안정시켜 주는 날이 있습니다.

수선을 마친 옷을 종이봉투에 담아 들고 나오는데, 문 위 작은 전구가 해질 무렵의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그 불빛이 복도 끝까지 따뜻함을 밀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손에 든 봉투가 가볍지 않았습니다. 옷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시간이 거기 단정히 꿰매어져 있었으니까요.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니, 제 말의 밑단이 조금 길었고, 마음의 솔기가 몇 군데 약했습니다. 그렇다고 난감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에 덧댈지, 무엇을 접어 감추어야 할지, 무엇을 펼쳐 보여야 할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제 마음 안쪽에서 실을 걸어 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밤이 내려앉으면 분필선처럼 보이던 문제도 조금 누그러듭니다. 내일 다시 재고, 다시 매만질 수 있겠지요. 오늘의 가장자리를 잡아당기던 걱정도 한 땀 한 땀 묶이면 견딜 만큼의 모양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붙들어 주는 작은 매듭 하나가 내일의 발걸음을 지탱해 줄지 모릅니다.

문을 닫는 소리가 멀어지고, 손안의 종이봉투에서 아직 따뜻한 스팀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진 한 땀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오늘과 내일로 이어주는 조용한 불빛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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