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불빛 아래서

📅 2025년 12월 12일 07시 01분 발행

골목을 걷다 문 닫힌 사진관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유리 너머로 오래된 카메라가 몇 대, 나무 서랍에는 필름 봉투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현상 중’이라는 작은 팻말이 붉은 실로 매달려 있었지요. 문이 반쯤 열리며 주인장이 커튼을 걷었습니다. 암실 안쪽, 붉은 안전등 아래에서 젖은 종이들이 집게에 매달려 있었고, 금속 트레이 속 액체 표면이 아주 조용히 흔들렸습니다. 은은한 화학약품 냄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숨소리까지 아끼게 되는 그 공기. 눈앞에서 한 장의 사진이 서서히 떠올라오는 순간, 사람의 얼굴이 물 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시간이 제 손등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주인장은 물의 온도를 손목으로 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급하면 사진이 타요. 가장 어두운 부분부터 먼저 나타나고, 밝은 자리는 뒤늦게 따라온다고요. 기다림이 사진을 망치지 않게 지켜 준다고요. 붉은 불빛 아래에서야 그 말이 더욱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밝음은 늘 마지막에 도착하는 선물처럼, 늦게 도착해도 제 자리를 잃지 않더군요.

하루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방 결론을 내리면 뿌옇게 번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마음속 이미지는 판정보다 정착이 먼저여야 선명해지는 듯합니다. 누군가의 표정, 아직 다 듣지 못한 사연, 덜 익은 감사의 말. 성급한 판단은 인화지를 조급히 꺼내는 손 같아서, 색이 고착되기도 전에 밖의 강한 빛에 바래고 맙니다. 반대로, 조용한 어둠과 적당한 온도, 그 사이를 오가는 부드러운 손길은 제 몫의 시간을 허락합니다. 그때 사진은 자신이 될 힘을 얻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속삭입니다(요한일서 1:5). 그 빛이 우리를 다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득 위로가 되었습니다. 암실의 어둠은 빛을 숨기려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망치지 않으려는 배려의 어둠입니다. 우리 삶의 어떤 밤도 그런 성격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음이 버림이 아니라, 선명해지기 위한 고요라면, 그 시간도 은총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지갑 속 낡은 사진 한 장을 떠올립니다. 모서리가 닳아 하얗게 일어났고, 비를 한번 맞았다 말라서인지 가장자리에 물결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진은 버티며 한 사람의 웃음을 품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정착액에 충분히 담가 두었기 때문이겠지요. 사람 사이의 말도, 기도에서 건져 올린 작고 떨리는 소망도, 그런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래 품어둘수록 흐려지지 않는 색이 있습니다.

오늘 놓쳤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덜 다정했던 인사, 지나친 농담, 말끝을 삼키던 침묵. 그런 것들을 마음의 암실에 하나씩 담가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물의 온도는 미안함의 온도와 비슷하고, 그 옆의 트레이는 감사의 온도와 닮아 있습니다. 붉은 불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습니다. 급히 흔들지 않고, 필요 이상의 빛을 들이밀지 않을 때, 숨은 선함이 마치 늦게 도착한 밝음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진이 물에서 건져져 집게에 매달릴 때, 가장자리에서 마지막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바깥 공기와 눈을 마주합니다. 우리도 그러하지요. 아직 젖어 있는 마음으로 세상 한가운데 서면 바람이 너무 세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물방울이 다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매달려 있는 시간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이 생각납니다. 정답보다 정착이 먼저일 수 있고,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붉은 불빛 아래서 떠오르던 한 사람의 얼굴처럼, 오늘의 당신 안에서도 무엇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중일지 모릅니다. 애써 끌어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는 선명함이 있습니다. 그 선명함이 이름을 얻는 순간, 어둠은 작업대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진처럼, 당신의 하루도 마침내 빛 속으로 걸어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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