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16일 07시 02분 발행
늦은 오후, 동네 이발소 유리문을 조심스레 밀자 미지근한 비누 향과 낮게 흐르는 라디오 사연이 반겨 주었습니다. 거울 앞 의자들은 가지런했고,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머무는 곳마다 먼지 알갱이들이 느리게 떠다녔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며 잡지를 펼쳤다가 그대로 덮었습니다. 마음이 책장을 넘기기보다 한숨을 먼저 넘기고 싶어 했기 때문이겠지요.
의자에 앉자 목을 감싸는 흰 보가 부드럽게 둘러졌습니다. 생소할 것 같던 클리퍼의 진동이 이내 익숙한 물결이 되어 두피를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가위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잔물결처럼 퍼지고, 분무기에서 뿜어진 물방울이 이마 근처에 가볍게 내려앉았습니다. 바닥엔 눈송이처럼 머리카락이 떨어져 쌓였고, 그 작은 조각들을 보며 지난 한 달의 분주함과 미뤄 둔 말들, 해명하려다 접어 둔 마음들이 함께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버리기로 결심해서가 아니라, 계절이 바뀌면 낡은 잎이 저절로 흘러내리듯 때가 이르면 비워지는 일이 있나 봅니다.
거울은 언제나 사실을 돌려주지만 다그치지 않습니다. 나의 얼굴과 나의 시간, 기쁨과 근심이 겹쳐 비칩니다. 그 앞에서 오래 외면했던 표정을 천천히 바라보게 됩니다. 손놀림이 섬세한 이발사는 말수가 적었고, 조심스레 귀 주변을 다듬는 동안 특유의 집중이 전해졌습니다. 설명 없이도 알아 들어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 뒤쪽을 손바닥으로 쓰다듬는 순간, 바람이 지날 자리가 새로 생긴 것을 알겠습니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시원함이 묘하게 마음까지 건드렸습니다. 바닥에서 솔질 소리가 시작되고, 회색과 검은빛이 뒤섞인 머리카락들이 모아져 한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쓸려 나가는 것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자란 만큼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바닥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하지 않게, 그러나 놓치지 않게, 필요한 것들을 모아 정리해 주시는 분이겠지요. 문득 떠오르는 한 말씀, “너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그 세심함 앞에서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대기석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하얀 눈썹의 어르신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의외로 닮아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왔지만, 이곳에서는 같은 리듬을 기다립니다. 삶도 그러하겠지요. 서두른다고 언제나 빨라지지 않고, 때로는 기다림이 가장 빠른 길이 되곤 합니다.
문밖으로 나오자 골목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습니다. 세상은 전과 같았지만, 공기의 이름이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오늘의 가벼움이 방종이 아니라 신뢰에서 온 것임을, 목 뒤에 남은 시원함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달라진 스케줄은 하나도 없는데, 마음의 무게중심이 옮겨진 듯했습니다.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돌봄이 시작될 때, 사람은 큰 결심 없이도 새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어 베개에 머리를 얹고 손끝으로 둘레를 더듬어 보니, 낮에 미처 말로 만들지 못했던 기도의 문장이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바닥 어딘가에 남아 있을 몇 올의 머리카락처럼, 쉽게 정리되지 않는 마음의 찌꺼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빗자루 소리와 가위 소리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손길과 하나님의 숨결이 겹치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거울 속 눈빛에 머물던 조용한 평안이 밤까지 이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