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21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골목 끝 사진관에 들른 날이었습니다. 여권사진을 찍으려 번호를 적고 기다리는데, 벽면 가득 작은 흑백 얼굴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마선과 눈꼬리, 웃음을 삼킨 입술들. 이름도 사연도 모르는 얼굴인데, 각자의 시간과 계절이 잔잔히 배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새 출발 앞에서, 누군가는 오래 걸어온 길의 쉼표에서 이 자리에 앉았겠지요.
의자에 앉으니 사진사님이 조명을 돌려 부드럽게 제 앞을 비추었습니다. 천으로 감싼 둥근 빛이 일렁이며 가까이 다가오고, 하얀 배경은 작은 주름 하나까지 또렷하게 드러나게 했습니다. 어깨를 조금 고르게 하자는 손짓, 턱 선을 살짝 낮추라는 눈빛. 말보다 손놀림이 먼저 알아듣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삶에서 가끔 필요한 것도 그런 조용한 맞춤이겠지요. 과하게 바꾸지 않고, 있는 모습에 어울리는 각도를 찾아 주는 배려.
찰칵, 짧은 음이 방울처럼 떨어지고, 화면에 제 얼굴이 떴습니다. 기계는 피부결을 매끈하게 해 주겠다며 여러 선택을 내밀었지만, 눈빛에 남은 하루들의 결은 감추어지지 않더군요. 지우고 덧칠할수록 되려 낯설어지는 표정이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새삼 배웠습니다. 빛이 센 곳에서는 그림자도 선명해지고, 감추려던 것도 함께 드러나는 법이지요. 그러나 그 선명함이 꼭 야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용한 확인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에 내가 있고, 이 얼굴로 오늘을 건너왔다는 확인.
사진이 인화되는 동안, 기계 안에서 미세한 숨소리 같은 진동이 이어졌습니다. 투명한 판 위를 느리게 지나가는 종이 한 장, 그 위로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각각 다른 배경 속에서 한 번쯤 정면을 바라보며 앉았을 가족들, 친구들, 교우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있었겠지요. 옆모습이 아닌 정면을, 피하고 싶은 각도 대신 마주해야 하는 자리. 그 짧은 시간은 아마도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고요한 고백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여기에 두는 일.
시편의 한 구절이 스며들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아셨나이다”(시편 139:1). 살핀다는 말과 안다는 말 사이에 긴 설명은 없지요. 그 사이에 들어 있는 것은 아마도 기다림일 것입니다. 성급히 고치기보다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치우친 노출을 바로잡는 조용한 손길, 배경과의 거리를 천천히 조절하는 인내. 그렇게 오래 머문 눈길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숨이 고르게 돌아오게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작은 사진 몇 장 속에 낮의 빛과 제 안의 어둑함이 둘 다 놓여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더 젊거나 더 강인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감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얼굴로 충분하다는 뜻은 오늘의 마음도 충분하다는 뜻일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겐 너무 소심해 보일 표정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다정해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 여러 해석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정면의 빛 앞에서 우리가 한번 온전히 앉아 보았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사진관의 문을 나서며 생각했습니다. 삶은 때로 측면에서, 때로 뒤에서 비춰도 결국 중요한 순간마다 정면을 마주합니다. 그때 필요한 건 특별한 포즈보다 숨 한 번 고르게 하는 일, 그리고 내 안팎을 지나온 빛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 오늘 손에 쥔 작은 증명사진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한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받아 적은 조용한 서류였습니다. 언젠가 또 다른 문턱에서 누군가에게 확인을 요청받을 때, 이 사진 속 눈빛이 대답해 줄 것입니다. 나는 여기 있었다고, 그리고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