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22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골목 안쪽, 형광등이 은은히 떨리던 작은 열쇠집에서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교회 창고문이 잘 잠기지 않아 열쇠를 하나 더 만들려 했지요. 벽 가득 줄지어 매달린 빈 열쇠들은 서로 닮았으면서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누구의 문을 기억하게 될지 아직 모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기계가 돌아갈 때 금속이 스치는 낮은 울림이 가게 바닥을 타고 번졌고, 잘려 나간 쇳가루는 어둡고 작은 고무 매트 위에 별처럼 흩어졌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손에 익은 작은 붓으로 가루를 살살 털어내며 말했습니다. “조금만 달라도 문이 안 열려요. 눈으로는 비슷해 보여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하루의 몇 장면이 천천히 떠올랐습니다. 분명 같은 말인데, 어떤 날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또 어떤 날은 같은 말이 철컥 소리만 남기고 서랍처럼 멈춰 버렸던 순간들입니다. 열쇠의 이가 한 칸만 어긋나도 빗장이 움직이지 않듯, 마음의 자물쇠도 아주 미세한 차이를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말의 높낮이, 멈춤의 길이, 눈길이 머무는 시간, 손끝의 온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더 큰 힘을 주어 돌려 보려다가, 문짝을 탓하거나 손잡이를 원망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문제는 언제나 그 미세한 자리, 깊이를 조금만 달리 해야 하는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쇠집의 공기에는 금속 냄새와 오래된 연필깎이 향이 섞여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원본과 새 열쇠를 함께 들고 빛에 비추어 치수를 재더니, 아주 조심스레 기계에 올려 다시 한 번 이빨을 매만졌습니다. 사람의 대화도 그런 손길을 기다릴 때가 있지요. 성급히 결론을 말하기보다, 그 사람의 고단한 하루를 빛에 비추어 길이와 깊이를 가늠해 보는 시간. 때로는 한마디 덜어내고, 때로는 쉼표 하나를 길게 붙이는 일. 그 작은 조정이 마음의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톱니를 맞물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런 한 줄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사도행전 16:14). 마음의 문은 어떤 때는 우리가 공들여 깎은 말과 배려로 열리지만, 어떤 때는 설명할 수 없는 손길로, 안쪽에서 조용히 열리는 경험을 합니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문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자세도 달라질 것입니다. 억지로 들어가려는 불안 대신, 기다릴 줄 아는 호흡과, 안에서 들려오는 기척을 놓치지 않으려는 귀 기울임이 자리할 것입니다.
계산대 옆에는 그동안 복사해 준 열쇠들이 묶여 있는 고리들이 몇 개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현관, 오래된 서랍, 오랜 약속을 지키는 작은 문들. 우리도 저마다의 고리를 들고 하루를 건너갑니다. 집과 우편함, 자전거 자물쇠 같은 눈에 보이는 열쇠뿐 아니라, 마음속에 숨겨 둔 보이지 않는 열쇠들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짧은 말, “괜찮습니다”라고 자기에게 건네는 낮은 수락, 한 사람을 오래 기다려 준 시간, 가만히 들어주는 귀. 이런 것들이 어떤 날에는 낡은 경첩을 부드럽게 적시는 기름처럼 작용하곤 합니다.
새 열쇠가 완성되자, 어르신은 파란 작은 표지를 달아 제 손에 건넸습니다. 손바닥에 닿는 금속의 차가움이 묘하게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이 작은 물건이, 사실은 만남과 쉼, 귀가와 안식을 연결하는 다리였지요. 가게 문을 나서며, 잃어버렸던 열쇠들이 생각났습니다. 당황하고 서둘러 문을 흔들던 밤들,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안쪽의 기척을 상상하던 순간들. 돌아보면, 그 어쩔 수 없는 기다림 속에서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밖에서 아무리 돌려도 열리지 않는 문들이 있고, 그런 문은 안쪽에서 우리를 기억해 줄 때 열립니다. 그동안 우리는 문밖에서 조용히 자신의 발소리를 듣고, 스스로의 호흡을 확인하며, 누군가의 집으로 스며드는 저녁 냄새를 통해 다정한 세계를 다시 떠올리곤 했습니다.
해가 기울어 골목의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주머니 속 새 열쇠가 가볍게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가 오늘의 마음을 정리해 주는 종처럼 들렸습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되는 날이 있습니다. 문득 떠올라 누군가에게 전하는 짧은 안부,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한 숨 길이의 쉼, 급히 닫아 두었던 서랍 앞에서 잠깐 멈추어 서는 일. 그렇게 맞춰지는 아주 작은 이 한 칸이, 생각보다 먼 곳을 이어 줍니다.
집에 돌아와 현관 앞 그릇에 열쇠를 내려두면, 금속이 닿는 둔탁한 소리가 조용히 울립니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신호처럼요. 아직 열지 못한 문들이 남아 있어도 괜찮겠습니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을 허비라 부르지 않게 되는 저녁이 있습니다. 그때 어쩌면,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부드러운 ‘딸깍’ 소리를 마음이 먼저 알아듣게 될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