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23일 07시 01분 발행
골목을 돌면 유리문 너머로 작은 불꽃이 튀는 가게가 있습니다. 열쇠를 복제하는 기계가 드르륵 소리를 내고, 둥근 물통에서 금속이 잠깐 식었다가 다시 손으로 올려집니다. 선반 위에 쌓인 잔잔한 쇳가루는 햇빛을 만나 반짝입니다. 번호표도, 대기줄도 없는 작은 가게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늘 묘하게 느긋합니다. 손바닥에 쥐고 온 낡은 열쇠는 생각보다 무겁고, 주머니를 맴도는 세월의 기척 같은 냄새를 풍깁니다.
주인장은 말수를 아끼고, 귀는 바쁩니다. 기계가 내는 울림을 듣고, 금속이 조금씩 깎이는 결을 듣고, 어느 홈이 아직 얕은지, 어느 모서리가 지나치게 각진지 손끝으로 눈금을 읽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면 단순해 보이는데, 한 번에 맞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열쇠는 작지만, 문 하나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도 익숙한 문 앞에 서서 손에 든 열쇠가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제까지 문제없던 회전이 오늘은 어딘가 걸립니다. 그럴 때 마음은 금세 조급해지지만, 금속이 제 모양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조용했습니다.
기계를 거친 새 열쇠의 이빨은 반듯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높낮이가 있고, 그 미묘한 차이가 문을 움직입니다. 관계 안에서도 그 미세함이 자주 생각납니다. 말의 고개를 아주 조금 낮추는 일, 듣는 귀의 홈을 한 칸 더 깊게 내는 일, 서둘러 판단하던 습관의 모서리를 가볍게 깎아내는 일. 때로는 그 과정이 뜨겁고, 금속을 긁는 소리처럼 신경을 서걱이게 합니다. 상처인지 다듬어짐인지 한동안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깎여나간 자리가 오히려 빛을 줍니다. 광약으로 문지른 가죽처럼, 닳은 곳에서 윤이 납니다.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주께서 내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시편 139:2) 마음의 열쇠를 맞추는 일에 대해 이보다 더 다정한 말이 있을까요. 나의 버릇과 리듬, 기쁨과 불안의 작은 톱니까지 아시는 분이, 허술해 보이는 공백들까지 계산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오늘은 유난히 고맙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고 계셔서 생기는 간격도 있겠습니다. 그 간격을 금속처럼 서둘러 메우지 않고, 듣고 기다리는 일로 채우게 하십니다.
가게의 천장 선풍기는 느린 속도로 돕니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는 바람이 손등을 스쳐 지나갑니다. 오늘의 기도는 어쩌면 그 선풍기와 비슷합니다. 커다란 변화를 당장 몰고 오지는 않지만, 일정한 박자로 마음을 식혀 줍니다. 불꽃은 잠깐 눈부시고, 냄새는 금세 사라지지만, 그동안 금속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홈 하나가 생기고, 그 홈 때문에 내일의 문이 조금 더 부드럽게 열릴 수 있습니다.
복제가 끝난 열쇠를 받아 들면 온기가 손에 옮습니다. 첫 회전은 늘 약간의 긴장이 있고, 두 번째는 덜 끊기고, 세 번째쯤이면 마침내 문이 조용히 물러납니다. 열리고 닫히는 일에는 늘 저마다의 속도가 있었습니다. 아직 걸리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 단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가게를 나서며 바닥에 뿌려진 쇳가루를 다시 봅니다. 오후의 빛이 그 작은 알갱이들 위에 내려앉아 잔잔히 반짝입니다. 오늘 마음의 가장자리에도 그런 반짝임 하나쯤 생겨 있기를,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작은 미세함이 생겨 있기를, 조용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