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04일 07시 01분 발행
지하철역 깊숙한 복도 끝, 분실물 센터 유리장 안에 우산들이 줄 서 있습니다. 손잡이는 각기 다른 곡선을 그리고, 천은 색과 투명도를 달리하며 조용히 접혀 있습니다. 비가 그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몇몇 우산의 끝에는 아직 물방울 자국이 얇게 말라 매달려 있습니다. 태그에 적힌 날짜와 역 이름, 습득 시각이 이 우산들의 잠시 동안의 신분증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바쁜 발걸음 사이에서 놓쳐진 것들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 잃어버린 시간의 모서리를 곱게 붙이고 있습니다.
우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도 비슷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급히 갈아타는 하루 중에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치듯, 어떤 날은 용기와 평정을 어딘가에 두고 온 듯합니다. 감정이 잠깐 길을 잃고, 말이 제때 나오지 않아 침묵으로 돌아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은 분실물이 되지 않으려 애쓰지만, 종종 손에서 미끄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곳이 버려진 물건의 종착지가 아니듯, 우리 내면의 놓친 것들도 돌아올 자리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분실물 센터는 ‘잊힘’의 증거가 아니라 ‘돌려줌’을 위한 기다림의 장소라는 사실이, 유리장을 투과하는 형광등 아래서 조용히 확인됩니다.
직원은 우산 손잡이를 부드럽게 닦고 천을 한 번 더 잘 접어 세워 둡니다. 낫 모양의 손잡이 하나에 살짝 벗겨진 옻칠 자국, 어린이용으로 보이는 짧은 우산의 장난스러운 스티커, 투명한 돔 우산의 스치듯 남은 화장품 향. 각각의 우산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가려 주던 작은 그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성경은 이 그늘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시편 121:5). 빗줄기를 툭툭 흘려내리던 천이 빗방울을 대신 받아냈듯,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게 무게를 나눠 드는 손길이 있었다는 고백이 조심스레 올라옵니다.
비가 그친 후에도 우산을 오래 펴 들고 설 때가 있습니다. 습관처럼, 혹은 아직 그칠 수 없다고 마음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삶도 비슷합니다. 이미 지나간 걱정을 접지 못해 한동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실물 센터의 우산들이 접혀 서 있는 모습은 그 접기의 기술을 닮았습니다. 완전히 접혀 있어서 가벼워진 순간, 우산은 누구에게 다시 들려도 부담이 덜합니다. 마음도 그런 때가 있습니다. 접혀서 가벼워진 걱정은, 돌아오는 사람의 손을 어렵게 하지 않습니다.
오후가 깊어질 무렵, 유리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와 오래 찾던 우산을 단번에 알아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확인 서류를 건네는 사이, 손은 이미 익숙한 손잡이를 감싸 쥡니다. 그 표정에는 돌아온 물건보다 되돌아온 자신을 만난 듯한 안도가 스며 있습니다. 우산은 다시 바깥 공기에 익숙해지려는 듯 천천히 펼쳐졌다 접힙니다. 마치 그동안의 기다림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말을, 철심의 작은 소리로 건네는 듯합니다.
분실물 센터를 나와 복도를 걸으며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순간은 어쩌면 무엇을 더 소유하는 시간이 아니라, 잠시 맡겨두고 기다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잃어버림’이 아니라 ‘돌아올 준비’로 불러볼 수 있다면, 유리장 안의 고요처럼 숨이 고르게 가라앉습니다. 오늘의 마음 어딘가에도 태그가 달려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이름이 불릴 때가 있다는 약속이, 바라보는 눈길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 동안, 실내의 공기는 조금 더 따뜻해 보이고, 미세한 물자국도 어느새 빛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문득, 어떤 그늘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 생각이 머물 자리를 마음 한켠에 마련해 둔 채, 복도의 끝이 천천히 밝아지는 광경을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