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07일 07시 01분 발행
오래 묵혀 둔 바느질 상자를 꺼냈습니다. 뚜껑을 여니 낡은 골무와 작게 말린 자, 굳은 초크 가루, 크기와 빛깔이 제각각인 단추들이 소곤거리는 듯 뒤섞여 있었습니다. 하얀 실타래를 잡아 바늘귀에 살며시 끼웠습니다. 실이 바늘의 눈을 통과하는 순간, 아주 작은 숨이 안에서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 무릎에 앉아 보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바늘이 천을 들어갈 때마다 ‘톡’ 하는 닫힌 소리, 손끝에서 굴리던 매듭의 감촉, 완성된 자리의 반듯함. 그때는 왜 그런 일을 꼼꼼히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오늘은 알 것 같습니다.
셔츠 하나에서 단추가 빠져 나간 지 오래였습니다. 바쁜 날들이 계속되면서 옷깃의 빈자리는 습관처럼 지나쳐졌습니다. 그런데 출근길에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작은 구멍이 이상하게 크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허전함이 목 둘레로 스며들어 마음까지 느슨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단추 하나가 없다는 사실보다, 그 빈자리를 오래 두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흔듭니다.
천을 포개고 바늘을 넣었습니다. 바늘이 지나갈 때마다 천이 미세하게 뜨겁게 울었습니다. 뒷면에서 매듭을 만들고, 앞면에서는 기계처럼 드러나지 않는 실선만 남았습니다. 고르게 빙 둘러 몇 번 더 돌려 묶자, 단추가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전도서 3:7)라는 말씀이 살며시 떠올랐습니다. 크게 뜯어내고 갈아엎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천천히 이어붙이는 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말 한마디가 빠져 나간 대화가 있습니다. 미안함의 단추, 고마움의 단추, 혹은 침묵의 단추 하나가 제때 달리지 못해, 마음의 옷깃이 벌어진 채로 하루가 저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화려한 새 옷이 아니라, 손끝의 온기를 지닌 바느질 같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한 번에 뒤집는 외침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뒷면에서 작은 매듭을 만들어 가는 일. 겉에서는 표 나지 않지만, 안쪽에서 단단히 묶인 그 매듭이 우리의 하루를 버티게 합니다.
단추를 달고 나서 손끝으로 톡톡 만져 보았습니다. 이어진 부분에는 가늘게 반짝이는 결이 생겼고, 그 결 속에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이 스며 있었습니다. 수선은 늘 뒷면에서 시작되고, 완성도 또한 뒷면에 머무르곤 합니다. 은혜도 종종 그렇게 오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필요한 곳을 놓치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 하루도 누군가의 삶에서 작은 단추 하나가 자리를 비웠을 수 있겠습니다. 말없이 건넨 시선이나 늦지 않은 문자 한 줄, 혹은 다 들은 뒤에 남겨지는 짧은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가 있습니다. 심판보다 닮은 색의 실을 고르는 마음이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바느질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천을 함부로 찢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을 때, 이미 꿰매지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옷걸이에 셔츠를 걸며 보니, 새 옷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단추 하나가 돌아와 옷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마음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제자리를 찾아오는 작은 것들이 하루를 단정하게 세웁니다. 오늘의 숨이 고요해지는 시간, 손끝에서 여전히 따뜻한 매듭 하나가 만져지는 밤이 되었습니다. 그 조용한 수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