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사이의 고요

📅 2026년 01월 10일 07시 02분 발행

밤이 깊어지면 집안의 소리들이 한 톤 낮아지더군요. 그 고요 속에서 식탁 끝에 놓인 작은 라디오를 켜면, 바삭거리는 잡음이 먼저 길을 엽니다. 다이얼을 아주 조금 움직이면, 멀리서 누군가의 말이 얼핏 잡히다가 금세 흩어집니다. 한 칸도 채 되지 않는 움직임에 소리가 탁해지기도, 갑자기 맑아지기도 하지요. 그 미세한 차이를 손끝으로 느끼다 보면, 오늘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저녁이면, 아버지께서 셔츠 소매를 접고 라디오 앞에 앉아 뉴스를 들으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노란 전구 하나가 둥근 창 안에서 조용히 빛났고, 진공관이 데운 먼지의 냄새가 났습니다. 크게 특별한 의식은 아니었지만, 하루 동안 퍼부었던 소식과 말들을 그 한 점의 불빛 앞에 내려놓는 작은 예식 같았습니다. 라디오는 다만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인데, 그 곁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제 호흡을 되찾곤 했지요.

하루를 지나온 마음에는 여러 주파수가 얽혀 있습니다. 처리하지 못한 일, 들은 것과 듣지 못한 것, 미처 건네지 못한 인사, 잊은 척 하고 지나친 걱정까지, 작은 부스러기처럼 남아 맴돕니다. 어떤 소리는 크고, 어떤 소리는 하려다 만 말처럼 끝이 흐립니다. 그 사이를 건너 맑은 음성이 자리 잡을 틈을 찾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라디오 다이얼을 맞출 때처럼, 마음에도 ‘조금’의 움직임이 필요할 때가 있더군요. 억지로 큰 소리를 끌어오려 하지 않고, 호흡을 한 번 가라앉히면 잡음 사이로 문장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목소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제가 맞추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손을 잠깐 멈출 때, 뜻밖에도 더 잘 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시편의 말처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문장이 문득 떠오릅니다. 가만히 있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보다, 이미 와 있는 분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일에 마음을 내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리를 키우기보다, 귀를 쉬게 하는 방식으로요.

돌아보면, 주님의 음성은 종종 사건보다 낮고, 감정보다 깊었습니다. 그 음성은 성급하지 않았고, 재촉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제 안에 흐르는 소란이 조금 가라앉으면, “오늘은 여기까지여도 괜찮다”는 뜻이 전해지곤 했습니다. 실패나 미완을 단정 짓지 않고, 내일을 미리 약속하지도 않으시면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품어주시는 방식으로요.

오늘도 여러 소식이 오갔습니다. 미뤄둔 통화가 떠오르고, 기억나지 않는 비밀번호 하나가 뜻밖에 마음을 쥐어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부엌에서 기계가 내는 작은 윙 소리를 들으며, 다이얼에 올려 둔 손을 떠올렸습니다.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약간의 숨 고르기, 한 박자 쉬는 시간, 마음의 초점을 반 칸 옮기는 것으로, 어쩌면 충분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에 ‘지금 여기’라는 주파수가 또렷해집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한밤에 풀 수 없고, 모든 답을 한 문장으로 얻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라디오의 노란 불이 작은 원을 그리며 방을 밝히듯, 마음에도 그만한 빛이 번질 때가 있습니다. 전체를 비추지는 못해도 발치쯤은 환하게 하는 빛, 그 정도의 밝기면 오늘을 지나기에 넉넉하다고 느껴집니다.

만약 오늘 밤, 각자의 자리에서 잡음이 살짝 얇아지고, 한 사람의 음성이 또렷해지는 순간을 만나신다면, 그건 누군가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겠지요. 다이얼을 고정한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듯, 마음도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와 닿는 밤—그 정도의 맑음이면, 오늘은 충분한 밤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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