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위의 봉투

📅 2026년 01월 13일 07시 02분 발행

우체국 문이 닫히기 직전의 시간은 늘 조금 느슨해 보입니다. 형광등이 하얗게 번지고, 창구 유리 너머로 고무도장과 투명테이프가 바쁘게 오갑니다. 번호표 속 작은 숫자들이 한 칸씩 앞으로 이동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손에는 각자의 사정이 담긴 상자와 봉투가 매달려 있습니다. 누군가는 계절 과일을 보냈고, 누군가는 손글씨가 가득한 카드 한 장을 붙들고 서 있습니다. 줄의 끝에 서서, 저울 위로 하나씩 몸을 올려놓는 그 꾸밈없는 사연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직원분은 봉투를 가볍게 쓸어 올려 저울 위에 얹으셨습니다. 숫자가 깜빡이며 자리를 잡습니다. “이 정도면 규격 우편으로 보내집니다.” 짧은 말 사이로, 무게가 곧 길이 되고 요금이 되는 질서가 보입니다. 봉투는 얇고 가벼운데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말들은 어쩐지 무거울 것만 같습니다. 오래 들고 있던 물건이 가볍지 않다는 걸 우리 손이 먼저 기억하듯이, 마음에도 저마다의 무게가 있습니다. 숫자로는 환산되지 않는, 오래 묵힌 숨의 무게 말입니다.

우표를 붙일 때 느껴지는 풀이 향긋하게 올라옵니다.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은 주소 위로 손끝 그림자가 스칩니다. 문득 오래전, 학교 앞 빨간 우체통 앞에서 팔을 쭉 뻗어 봉투를 떨어뜨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금속 안쪽의 차가운 감촉, 내 손을 떠난 편지가 어둠 속 어디론가 나아가던 그 둔탁한 소리. 보이지 않는 통로가 세상에는 이렇게 많았지요. 그 사이로 우리의 안부와 부탁, 미안함과 감사가 흘러왔습니다.

도장이 ‘탁’ 하고 찍히는 순간, 봉투는 더 이상 제 손의 물건이 아닙니다. 마음속 오래 붙들고 있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낼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붙잡고 있던 사연의 주소를 적어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일. 때로는 글씨가 번져 수신인이 흐릿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분은 주소록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누구의 손에도 닿지 못했던 문장들이 그분께는 도착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약속이 오래 마음속에 울립니다(마태복음 11:28).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번호표가 손에 잡힙니다. 손끝에는 테이프의 끈끈함이 조금 남아 있고, 코끝에는 풀의 은은한 냄새가 따라옵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도 결국은 소인처럼 날짜가 찍혀 서랍 속에 차곡히 쌓이겠지요. 어떤 날은 ‘수취인 불명’이라는 도장을 맞고 돌아온 마음이 책상 위에 오래 남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편지가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직 문을 연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이가 있는 편지는, 돌아서더라도 다시 길을 찾곤 했으니까요.

우체국 문을 나와 고개를 들면, 하늘은 이미 저녁의 색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저울이 재어주는 건 무게뿐인데, 우리가 문 앞에서 버티며 확인하고 싶었던 건 무게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무게를 확인하는 사이, 마음은 누군가의 품을 떠올립니다.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안심의 온도가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봉투는 제 길을 갑니다. 열리지 않은 여백이, 아직 쓰이지 않은 구석이, 누군가의 이름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기다리며요. 그렇게 도착하는 사소한 안부 하나가, 이상하리만치 하루를 가볍게 해주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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