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16일 07시 02분 발행
시장 건물 한쪽에 붙은 작은 신발 수선소에는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합니다. 아크릴 가림판 너머로 노란 스탠드 불빛이 고요히 내려앉고, 작업대 위에는 나무망치와 작은 못, 사포 가루가 정직하게 자리합니다. 주인 어르신의 손등에는 오래 묻은 본드 자국이 있고, 손가락 마디는 굳은살로 둥글게 말려 있습니다.
굽을 갈아내는 소리는 세상을 흠집 내지 않는 장단으로 이어지고, 낡은 밑창은 어른의 숨처럼 얇게 흔들립니다. 어르신은 신발을 뒤집어 들고 가장 닳은 부분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말없이 가만히, 마치 주인의 걸음과 하루의 무게를 맞아 주는 듯합니다.
누군가의 발은 늘 한쪽으로 조금 더 기댑니다. 사람 마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많이 기대던 자리가 먼저 얇아지고, 가장 오래 버틴 면이 조용히 스러집니다.
어르신은 밑창을 정갈하게 다듬고, 새 고무 한 장을 슬며시 겹칩니다. 본드 냄새가 잠깐 퍼졌다가 사그라지고, 집게가 신발을 꽉 물어 시간이 스며들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그 사이 라디오에서 작은 사연들이 지나가지만, 작업대 위의 침묵이 더 깊게 듣고 있는 듯합니다.
삶에도 이런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보다 붙잡아 주는 순간, 설명보다 기다림이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 서둘러 붙이면 금세 다시 떨어지듯, 마음의 밑창도 붙잡을 틈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르신은 작은 못을 몇 개 더 박아 줍니다. 톡, 톡, 톡, 소리가 겨울의 단단한 공기를 적십니다. 그 소리는 꾸짖음이 아니라 안부에 가깝고, 부활이 아니라 회복에 가깝습니다.
닳은 흔적을 따라 손길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오래 아프던 자리까지 외면하지 않는 사랑을 떠올립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문득 겹칩니다(이사야 42:3). 버려도 될 것을 굳이 품어 새 숨을 얹어 주는 마음, 그 자리에 은총이 깃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발은 주인을 닮아 갑니다. 손목의 힘, 계단의 높이, 하루에 걷는 걸음의 길이를 신발이 기억합니다. 그래서 수선소에 맡겨진 신발은 주인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제 주인을 닮아 있을지요. 오래 참은 문장들의 잔금, 말하지 못한 동그라미, 미뤄 둔 서운함의 모서리가 바닥에 쓸려 무늬처럼 남아 있을지요. 때로는 그 무늬가 부끄럽지만, 그 무늬 덕분에 우리가 어디를 지나왔는지도 알게 됩니다.
작업대 위의 시계가 한 칸씩 넘어갑니다. 붙인 밑창이 마르는 동안 어르신은 다른 신발의 끈을 풀어 혀를 펼치고, 뒤축의 주름을 다독여 줍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오래 걸린 시간만이 남긴 숨결이 있습니다.
수선이 끝나면 어르신은 신발을 털어 손바닥에 올려 놓습니다. 빛에 비쳐 본 뒤, 다시 바닥을 손톱으로 긁어 붙음새를 확인합니다. 그 다음 조심스레 내려놓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입니다.
그 순간, 작은 완성의 기쁨이 방 안 공기를 바꿉니다. 요란하지 않은 새로움은 늘 그렇듯 조용히 찾아옵니다.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은 남겨 두고, 꼭 갈아야 하는 것만 단단히 붙였습니다.
저마다의 발걸음에도 이런 오후가 한 번쯤 건너가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내딛느라 얇아진 자리, 누구도 몰라 준 버팀의 흔적을 알아보는 손길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잠깐의 기다림 끝에, 다시 걸어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몸을 먼저 일으키는 것.
수선소 문을 나서는 발밑이 조금 높아진 듯합니다. 높아졌다는 느낌보다, 조용히 받쳐 준다는 안심이 먼저 옵니다. 같은 길이라도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가 끝날 때, 우리 안에도 보이지 않는 집게 하나가 살짝 물린 듯합니다. 아직 굳어 가는 시간,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말 한마디 덜어 두는 시간. 그 틈 사이로 따뜻한 접착이 퍼져 나가면, 어제의 흠도 오늘의 길을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갑자기 특별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밑창 하나 붙인 정도의 변화로도 발은 멀리 갑니다. 그렇게 다져진 걸음으로, 자기만의 리듬을 다시 찾는 저녁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