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망치의 시간

📅 2026년 01월 27일 07시 02분 발행

시장길 끝, 페인트가 벗겨진 작은 간판 아래 오래된 구두 수선집이 조용히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휘어진 형광등이 낮은 빛을 떨고, 중파 라디오에서 잡음과 뉴스가 번갈아 흘렀습니다. 본드와 광약, 가죽이 섞인 냄새가 코끝에서 둥글게 맴돌았습니다. 구석에서는 회색 고양이가 귀를 접은 채 졸고 있었고, 바닥에는 잘게 부서진 고무 가루가 눈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손님은 많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닳은 구두 한 켤레를 손바닥에 올려 무게를 재듯 가만히 들었습니다. 굵은 손마디와 짧게 깎인 손톱 사이로 오래된 실밥의 촉감이 스며 있었습니다. 그는 앞코의 주름을 부드럽게 쓸어보며, 마치 오래된 얼굴을 알아보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직 멀었네요.” 낮은 목소리에서 별 일 아니라는 안심이 들렸습니다. 낡았지만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분필로 바닥에 가느다란 선을 긋고, 송곳으로 작은 구멍들을 내고, 기다란 실을 바늘귀에 꿰는 손놀림이 이어졌습니다.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지만 머뭇거림은 없었습니다. 망치가 가죽을 두드릴 때마다 규칙적인 소리가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습니다. 침묵과 소리 사이에 놓인 작은 쉼표들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마음의 호흡처럼 느껴졌습니다.

구두는 발의 생애를 기억하는 그릇 같습니다. 비 오는 오후의 망설임, 병원 로비의 서늘한 기다림, 손주 운동장 흙먼지의 환한 기척, 계단 모서리에서 급히 돌았던 순간들까지. 긁힌 자국마다 속삭이는 이야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밑창의 닳은 방향은 걷는 버릇을 말해주고, 해진 가장자리는 자주 멈춰 섰던 자리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신앙도 때로는 새것을 얻는 기쁨보다, 익숙한 것을 고쳐 신는 인내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다 닳은 부분은 바꾸되, 발에 배인 모양은 살려 두는 배려. 사랑이란 그 모양을 존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부를 갈아엎기보다, 품고 지내온 것의 숨을 듣고 필요한 만큼만 지지대를 세우는 일. 그 사이에 마음의 온기가 유지되는 듯했습니다.

이사야 말씀처럼,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 하셨지요. 부러뜨리지 않고, 상처의 결을 알아보는 눈길이 있다는 고백. 버리는 대신 살려 내는 마음이 우리를 붙들어 주었다는 기억. 그 눈길 아래서 오래된 것들이 다시 제 일을 찾아가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수선이라는 일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바닥을 뒤집고, 속을 드러내어, 보이지 않던 층과 층을 맞추는 조용한 공력의 시간입니다. 바늘은 표면만 훑지 않고 깊이를 건너갑니다. 어떤 실은 밖에서 거의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서 긴장을 나눠 가지며 전체를 지탱해 줍니다. 한 땀과 다음 땀 사이에 깃드는 집중이, 삐걱거리던 소음을 가라앉히는 듯했습니다.

우리 안의 오래된 습관과 쉽게 무너지는 의지, 마음에 남아 있는 서운함의 켜도 이와 닮았습니다. 더 세게 묶는다고만 나아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쪽의 헐거움을 만나고, 그곳에서부터 시작할 때 비로소 힘이 생기는 듯했습니다. 오래 미루던 전화 한 통, 서툴지만 진심이 실린 첫마디가 겉을 넘어 속을 잇는 실이 되어 주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기도는 때로 그런 실처럼 느껴집니다. 겉으로는 표시가 적지만, 안쪽에서 두 겹을 하나로 엮어 주는 힘. 누군가의 이름을 조용히 부를 때 생기는 보이지 않는 매듭이, 말로 설득할 수 없던 부분들을 천천히 붙들어 줍니다. 밤을 건너는 동안 팽팽했던 마음의 실이 조금씩 풀리며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주인은 새 밑창을 붙이고, 한밤을 맡겨 두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본드가 완전히 숨을 가라앉혀야 한다며, 서두르면 다시 벌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음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말이나 결심보다 시간이 만들어 주는 단단함, 눌러 두는 적당한 무게, 조용히 흘러가는 밤공기의 도움으로만 가능해지는 자리맞춤이 있었습니다.

가게 선반에는 수선 중인 구두들이 줄을 지어 누워 있었습니다. 약간 벗겨진 선반의 페인트 위에 각자의 이름표가 달려 있었고, 어느 구두는 새 박음질이 반짝거렸습니다. 기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온기가 있었습니다. 작은 망치의 소리, 라디오의 잡음, 고양이의 느린 숨이 서로 섞이며 그 방을 하나의 시간으로 묶고 있었습니다.

삶을 지나오며 닳은 부분이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는,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머뭅니다. 새 밑창의 냄새와 오래된 갑피가 만나는 것처럼, 오늘의 빛과 어제의 그림자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 곁에서 조용히 실을 끼우고 계신 손길을 생각하며, 선반 위에서 숨을 고르던 구두들처럼 한 호흡 더 머무는 저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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