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가 달린 기다림

📅 2026년 02월 02일 07시 01분 발행

시청 지하 복도 끝에 작은 문이 있습니다. ‘유실물 보관소’라는 손글씨 표지가 붙어 있고, 낮은 형광등이 잔잔하게 깜박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투명한 상자들이 층층이 놓여 있고, 상자마다 누군가의 하루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습니다. 길에 놓고 간 우산, 버스 좌석에 남겨진 모자, 서랍처럼 얌전히 닫힌 지갑, 단 한 짝만 남은 장갑, 새로 산 듯 반짝이는 공책. 비닐 냄새 사이로 어제의 비와 오래된 비누 향이 한 섞입니다. 직원 한 분이 태그에 적힌 글자를 지그시 확인하고 또렷하게 묶어 둡니다. 날짜, 장소, 짧은 메모. ‘3월 28일, 중앙로 2번 출구 근처. 진회색.’ 글자마다 주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듯합니다.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잃어버린 것들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붙듭니다. 자리를 잃었을 뿐,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태그처럼 달려 있습니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상자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상자 속 물건들은 말이 없지만, 모두가 비어 있던 자리를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손에 익던 무게, 주머니 속 체온, 걸음의 리듬. 주인을 알아볼 준비를 한 채 낮은 빛 아래에서 시간을 건너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이렇게 작은 유실물들이 생겨납니다. 바쁨 속에서 놓친 안부, 끝내 전하지 못한 미안함, 들려주려다 삼켜버린 칭찬 한마디, 마음속 깊이 떨어뜨려 놓은 용기. 때로는 믿음조차 제자리에서 미끄러져 멀어진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또한 사라졌다고 단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상자들처럼, 삶에도 보이지 않는 선반이 있는 듯합니다. 쉽게 버리거나 지워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손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기억과 마음들이 조용히 머물러 있는 선반입니다.

그 선반을 떠올리면 한 구절이 천천히 떠오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이름이 태그처럼 단단히 묶여 있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제자리를 잃어도 존재는 지워지지 않고, 주인이 우리를 먼저 기억하신다는 약속이 마음에 등불을 켭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주인을 향해 보관되어 있다는 진실이 숨을 고르게 합니다. 돌아갈 길을 찾는 동안, 그 이름은 쉬지 않고 불리고 있다는 확신이 깊게 스밉니다.

보관소를 나오며 주머니가 가벼운 대신 마음에 묵직한 온기가 얹힙니다. 세상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잊히지 않고 있다는 체감이 발걸음을 천천히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무엇 하나 되찾지 않았지만, 무엇도 완전히 잃지 않았다고 느껴집니다. 불빛 아래 유리상자에 잠시 기대어 있던 물건들처럼, 우리 안의 말과 표정과 용기들도 적당한 온도로 보존되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언젠가 손이 닿는 때가 올 것이고, 그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듯 자신을 다시 알아볼 수 있겠지요. 그 생각만으로도, 낮게 울리던 형광등 소리가 한층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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