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2월 03일 07시 01분 발행
골목 끝, 불투명한 비닐문을 젖히고 들어가면 작은 수선소가 있습니다. 가죽과 본드 냄새가 조용히 섞여 있고, 라디오는 오래된 노래를 낮게 흘려보냅니다. 기다리는 의자에는 누군가 남기고 간 우산이 기댄 채 말라 가고, 계산대 옆 작은 선반에는 반짝이는 못과 닳은 솔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한 켤레의 구두를 맡겼습니다. 밑창이 많이 닳아, 걸음을 멈출 때마다 바닥에서 모래가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수선하시는 분은 말이 적은 분입니다. 구두를 뒤집어 들어 올리고, 손끝으로 마모된 모서리를 천천히 짚어보십니다. 송곳이 들어갈 자리를 찾는 눈빛이 신기하게도 따뜻합니다. 그분의 손은 느리지만 서두르지 않고, 못이 박힐 때마다 “톡, 톡” 작은 소리가 가게 전체에 울립니다. 그 소리 사이로 숨이 고르게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종이컵에 부은 보리차가 내 손을 데웁니다. 차의 온기가 손바닥에서 팔꿈치를 지나 마음끝까지 오르내리며, 묘하게도 오늘의 피곤을 덜어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밑창이 닳았다는 것은 내가 어딘가를 오래 걸어왔다는 뜻이었습니다. 성급했던 날도 있었고, 망설여 돌아섰던 날도 있었습니다. 구두의 밑창처럼 마음의 밑바닥도 얇아질 때가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금이 가고, 사소한 일에 물이 스며드는 날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어쩐지 스스로가 영 못쓸 물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가게에서는 닳았다는 이유가 버림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닳았으니 고칠 자리가 생겼다고 여깁니다. 상처를 중심으로 일은 시작됩니다. 성경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이사야 42:3)고 말합니다. 그 말이 오늘은 못 소리 사이에서 또렷이 들립니다.
수선이 끝났을 때, 구두는 광이 돌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구두는 아닙니다. 발등의 얇은 주름과 안쪽의 작은 얼룩은 여전히 그 구두의 시간입니다. 그 흔적이 남아 있어 더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손에 들자 무게도 익숙했습니다. 무게가 있다는 건 그동안 나를 지탱해 온 이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여전히 제 발 모양을 잊지 않은 채, 다시 걷겠다는 준비를 마친 느낌이었습니다.
문을 나와 골목에 서니, 아직 겨울의 공기가 남겨 둔 싸늘함이 발등에 스칩니다. 새로 갈아 낀 밑창은 바닥을 조심스럽지만 또렷하게 받칩니다. 마음 한켠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단해지는 과정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 사이를 누군가 세심하게 만지고 있다는 것. 대개 고치는 일은 화려하지 않고, 대체로 천천히 진행됩니다. 그래서인지 기다림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보리차는 식어 가지만, 식는 동안에도 내 손을 한 번은 데워 주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겠습니다. 닳은 지점이 자꾸 스며드는 곳이라면, 그곳에 못 하나, 실 한 땀처럼 조심스러운 관심이 앉을 자리가 있습니다. 말보다 먼저 눈짓이, 설명보다 먼저 앉아 주는 시간이 작업대 위에 놓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큰 사건 없이도 발걸음이 달라지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소리는 작고 감각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발바닥이 알려 줍니다.
오늘의 골목도 바쁘게 흐릅니다. 가끔은 화려한 새것이 부럽지만, 손때 묻은 것들이 품고 있는 든든함이 있습니다. 닳아 없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고침이 내면의 어떤 자리까지 스며들어, 다시 걸어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건네는 오후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발끝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안도감이 오래 가지를 붙잡듯 따라오는데, 그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리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