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가 지나간 뒤의 플랫폼

📅 2026년 02월 09일 07시 01분 발행

막차가 떠난 뒤의 역은 유난히 밝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플랫폼 위로 형광등이 오래된 가을처럼 잔잔히 떨고, 광고판의 푸른 바다가 소리 없는 파도를 되풀이합니다. 종이컵 하나가 둥글게 굴러가다 선로 끝에서 멈추고, 먼 곳에서만 희미한 진동이 돌아옵니다. 밤은, 이렇게 빛을 다 걷어 가지 않고 조금 남겨 두곤 하더군요.

역무원이 벤치를 닦습니다. 나무결 사이에 낀 하루를 작은 솔로 건져내고, 바닥에 붙은 어제의 흔적을 조심스레 들어 올립니다. 그것은 반짝임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아침의 발걸음이 어제에 걸리지 않도록 길을 매만지는 손길에 가깝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놓치지 않는 움직임, 그 조용함이 이상하게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마음에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끝이 괜히 뾰족해졌던 순간, 웃으며 넘겼지만 밤이 깊을수록 묵직해지는 장면들, 퇴근길 창가에 기대 있다가 흘려보낸 눈인사 같은 자잘한 잔상들이 플랫폼 모서리에 남습니다. 그냥 둔다고 사라지지 않더군요. 아침이 오면, 대충 밀어 둔 것들이 도리어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큰 소리로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지요. 어떤 밤에는 역무원처럼 조용히 마음의 구석을 돌아다니시며, 구겨진 표처럼 쥐고 있던 후회들을 하나씩 펴 보이십니다. 빠르게 가던 시계의 분침을 살짝 멈추게 하듯, 숨 가빴던 생각을 천천히 호흡으로 돌려놓으십니다. 반짝임이 아닌, 믿을 수 있는 반복으로 새벽을 여는 분. 그 인내가 우리를 지키는 담장이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7). 지킨다는 말은 문을 잠가 두는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밤새 자리를 지키는 등불처럼, 필요할 때는 가까이 더 다가와 주는 일. 막차의 꼬리빛이 터널 끝으로 스며든 뒤에도 이어지는 긴 숨결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동행 말입니다.

문득 오늘 나눈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마지막 차처럼 느껴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서둘다 보니 손을 못 흔들고 떠난 마음은 없었는지요. 그렇더라도 주님은 놓친 것들 위에 여백을 남겨 두십니다. 내일, 같은 문장이라도 한 단어를 고쳐 쓰게 하시는 분. 사랑을 늦게라도 배우게 하시는 분이시지요.

역무원이 벤치 밑에서 작은 동전 하나를 발견합니다. 먼지를 털고, 작은 상자에 조용히 넣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제 마음속에도 비슷한 반짝임이 떠오릅니다. 감사와 미안함, 이름표 없이 구석에 굴러다니던 것들이었지요. 밤이 길수록 오히려 또렷해지는 빛이 있다는 걸, 그때 조금 알았습니다.

오늘 마음의 문이 조금 일찍 닫혀도 괜찮겠습니다. 열쇠는 지켜 주시는 분의 손에 잠시 맡겨 두어도 안전합니다. 우리 안의 선로가 식는 동안 생각의 열차도 속도를 늦추겠지요. 아침은 어김없이 오고, 첫 안내음은 어제보다 조금 부드럽게 들릴지 모릅니다.

아마도 우린 그 역무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은혜는 대개 이름표 없이 다녀가니까요. 다만 첫차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올 때, 바닥의 매끈한 감촉과 빈자리가 우리를 조용히 맞아줄 것입니다. 그 순간 알게 되겠지요. 밤사이 누군가가 마음을 다녀가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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