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에 머문 저녁의 박자

📅 2026년 02월 24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끝 골목, 붉은 전등이 낮게 떨리는 곳에 오래된 시계방이 있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묵직한 기름 냄새와 함께, 수십 개의 똑딱거림이 서로 겹쳐 작은 파도를 만듭니다. 유리 진열장에는 낡은 회중시계와 얇은 손목시계가 나란히 누워 있고, 벽에는 각자의 얼굴을 가진 벽시계들이 시간의 표정을 달리합니다. 저는 오늘, 어머니가 젊을 적에 아버지에게 선물 받으셨다는 손목시계를 찾으러 들렀습니다. 뒷면에는 희미하게 새겨진 이니셜과 날짜가 남아 있지요. 닳은 가죽끈이 손끝에서 사부작거릴 때, 오래된 웃음과 오래된 걱정이 함께 비집고 나옵니다.

사장님은 루페를 한쪽 눈에 끼고, 머리를 약간 숙인 채 얇은 핀셋으로 템포 같은 스프링을 달랩니다. “먼지 한 톨이 걸려도요, 금세 힘이 달려 멈춥니다.” 낮게 웃으며 하시더군요. “그래도 안쪽에서 미는 힘이 살아 있으면 다시 갑니다. 한 바퀴가 다음 바퀴를 밀어 올려주거든요.” 그 말을 듣는 동안, 제 호흡도 모르게 느려졌습니다. 불규칙하던 저의 마음도 그 박자에 발을 맞추려는 듯 고요해졌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종종 이유 없이 멈추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이유 없음’이 아니라, 너무 미세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일 때가 많지요. 작게 쌓인 서운함 한 톨, 잠을 건너뛴 밤 하나, 말하지 못한 질문 하나. 딱히 큰 고장이 없어 보여도 어느 순간 심지가 약해져,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창밖을 보게 만드는 그 틈. 시계방의 조용한 기술은 그 틈을 다그치지 않습니다. 확대경 아래로 문제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윤활유 한 방울로 마찰을 덜어주고, 너무 조였던 나사를 반 바퀴쯤 풀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 삶도 누군가의 다정한 확대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원인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작게 걸린 것을 작게 다루어 주는 손길 말입니다.

수리를 마친 시계는 완벽하게 새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리에는 옅은 흠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분침은 아주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덜 완벽함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지나 살아온 시간의 표식이니까요. 어머니가 젊었을 때, 약속 시간에 맞추어 뛰던 발자국 소리, 겨울 난로 위에서 말리던 장갑의 촉감, 장보던 손의 온기까지도 그 시계의 얇은 금속에 겹겹이 들러붙어 있는 듯했습니다. 그 흔적이 있기에, 멈춤에서 다시 가는 법을 배웠을 것 같습니다.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 31:15). 이 말은 거창한 선언이라기보다, 시계의 작은 톱니처럼 낮은 자리에서 속삭이는 고백 같습니다. 세상은 큰 바늘로 시간을 재지만, 주님은 초침 사이의 미세한 간격을 보시는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불안하게 흔들릴 때, 그 간격 속에서도 박자를 잃지 않도록 잡아 주시는 분. 그래서 완벽하게 멈추지 않았던 우리의 안쪽 힘이, 다시 다음 바퀴를 밀어 올리도록 기다려 주시는 분.

시계방의 소리는 교회 종소리처럼 크게 울리지 않습니다. 대신 귓속 가까이서 조용히 약속합니다. 지금의 고단함이 영원은 아니라고, 이 박자를 건너면 다음 박자가 온다고. 바깥은 어느새 어둑해지고, 유리문에 매달린 작은 풍경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저는 수리된 시계를 조심스레 손목에 채워 봅니다. 마치 오래 비워 두었던 의자 하나가 다시 자리를 찾는 것처럼, 손목의 맥박은 시계의 리듬과 부드럽게 합쳐집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빛은 조금씩 말라가는데, 제 안쪽에서는 소박한 정확함이 되살아납니다.

사장님이 마지막으로 말한 문장이 남습니다. “어쩌다 멈추는 건, 크게 잘못한 게 아닙니다. 쉬었다가 다시 가는 거지요.” 골목을 나와 저녁 바람을 맞으니, 어둠도 시간을 맞추듯 천천히 깊어집니다. 똑—딱—똑—딱. 오늘 밤, 이 작은 박자가 각자의 방에서 제 자리로 돌아오고 싶은 무언가를 조용히 이끌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의 첫 걸음이 아주 크지 않아도, 그 박자에 닿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저녁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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