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3월 08일 07시 01분 발행
저녁이 깊어갈 무렵, 시내버스가 하루의 마지막 구간을 돌아들어오는 종점에 잠시 서 있었습니다. 도로를 달리며 묻힌 먼지가 노을빛을 따라 내려앉고, 차들은 하나둘 시동을 낮추었습니다. 대합실은 크지 않았고, 벽에는 낡은 시간표가 테이프로 덧대어 붙어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다음 차를 기다리는데, 들어선 기사님의 보온병에서 얇은 김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김이 공기 중에 짧은 곡선을 그리다가 이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바쁜 하루도 이런 잠깐의 숨을 어딘가에서 품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종점의 시간은 조금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했습니다. 누군가는 동전을 세어 작은 주머니에 넣고, 또 누군가는 운행표시판을 돌려 다음 번호를 맞추었습니다. 라디오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켜져 있었고, 누군가의 웃음이 캡 모자를 넘어 조용히 번졌습니다. 어깨를 살짝 펴는 소리, 신발 밑창이 바닥을 가볍게 쓸고 지나가는 소리, 종이컵 벽을 타고 도는 미지근한 온기가 그 공간을 채웠습니다. 거창한 대화나 장엄한 마침표는 없었지만, 그 대신 자잘한 회복의 조각들이 서로 어깨를 건드리며 지나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도 이처럼 표지판에 잘 드러나지 않는 ‘끝과 시작의 틈’이 있습니다. 할 일을 끝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여전히 깜빡이는 날, 잘 지냈느냐는 인사 뒤에 전해지지 못한 표정이 남는 순간, 문을 닫고도 손잡이를 한 번 더 만지작거리게 되는 밤. 달려오느라 미루어 둔 숨이 동그랗게 모여드는 때입니다.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신 말씀이, 종점 대합실의 낮은 조명처럼 그 틈을 비춰 주는 듯했습니다.
그 쉼은 문제를 곧장 고쳐놓는 손기술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다만 체온이 돌아오듯 마음이 제자리로 슬며시 걸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의 눈가에서, 어쩌면 오늘 지나친 수천 개의 표정이 조용히 정리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온기가 말이 되어 건너가는 순간, 작은 숨결이 서로의 이야기가 되는 자리. 거기서 사랑은 목청을 높이지 않고도 방향을 가리키는 듯했습니다.
버스 기사님들 사이에 오가는 말 몇 마디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길이 좀 막혔지요.” “그래도 마지막 코스는 한결 부드럽네요.” 그 말들 사이로 들고 나는 소리에는 서로의 무게를 헤아리는 마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누구는 가족의 사진이 꽂힌 지갑을 보며 잠깐 미소를 지었고, 누구는 내일의 노선을 머릿속으로 더듬는 듯했습니다. 다 알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사연이 그 작은 방 안에서 잠시 어깨를 붙였습니다. 묵직했던 하루가 완전히 가벼워지지는 않더라도, 함께 머문 몇 분이 내일을 견디게 하는 얇은 다리가 되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큰 북소리 대신 작은 기척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심을 생각했습니다. 종점에 비친 조도 낮은 불빛처럼, 지나치게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마음의 자리를 밝혀 주십니다. 오늘 이 정도면 되었다고, 내일의 시작은 지금의 숨에서 이미 자라나고 있다고, 조용히 알려 주시는 듯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새 약속을 재촉하기보다, 이미 충분히 건너온 시간을 인정해 주는 온기와 닮아 있었습니다.
잠시 뒤 버스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차창에 사람들의 얼굴이 겹겹이 비치며, 각자의 밤으로 흩어졌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발걸음 속에 아까의 따뜻함이 금세 사라질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컵에 닿았던 온기는 손바닥에서 천천히 식어 갔습니다. 종점에서 받은 그 숨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의 남은 길이 길든 짧든, 그 미지근한 온기가 누군가의 손끝까지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까지 번져갈지, 조용히 지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