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쪽 솔기의 안부

📅 2026년 03월 11일 07시 01분 발행

오후가 기울 무렵, 동네 수선집에 들렀습니다. 오래 입은 외투의 단추 하나가 겨우겨우 자리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 재봉틀이 낮게 숨 쉬는 소리가 먼저 반겼습니다. 금속 발판은 반질했고, 주황색 스탠드등 아래로 분필로 그어 둔 하얀 선들이 천 위에 부드럽게 누워 있었습니다. 작은 자기 접시엔 핀이 꽃처럼 꽂혀 있고, 나무 상자 속에서는 제각각 모양의 단추들이 조용히 서로를 기대고 있었습니다.

수선을 맡은 할머니는 외투를 뒤집어 안쪽 솔기를 먼저 살피셨습니다. “앞에서만 보면 멀쩡해 보여도, 안쪽이 좀 풀려 있지요.” 그러고는 실을 두 번, 세 번 바늘귀에 끼우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면에서 천을 겹겹이 통과하는 손놀림이 어쩐지 기도처럼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는 매듭을 밖에 두지 않으시고 깊숙이 숨겨 오래 가게 하셨습니다. 바늘끝이 지나간 자리들이 금방 식지 않은 온기를 남겼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창가에 내리꽂히던 빛이 조금 누그러지고, 가게 안의 먼지들이 느린 춤을 추듯 떠다녔습니다.

사람의 하루도 이렇게 안쪽 솔기가 버텨 주는 덕분에 넘어갈 때가 있지요. 겉으로는 단정해 보이는데, 속마음의 바느질이 느슨한 날이 있습니다. 관계의 단추가 헐거워져 말 한 마디가 쉽게 떨어져 나갈 듯 덜그럭거릴 때도 있고요. 성급히 앞면만 몇 땀 꿰매면 금세 또 터져 버린다는 것을, 수선집의 오후가 말없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편에서 손을 더 들이는 일, 그 작은 수고가 오래 버티게 한다는 것을요.

믿음의 길에서도 그렇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사건보다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매듭이 우리의 내일을 붙듭니다. 서둘러 소리를 키우기보다, 조용한 자리에서 실을 한 번 더 통과시키는 시간이 있지요. 이름을 부드럽게 불러 주는 일, “그때 내가 미안했네” 하고 낮은 톤으로 건네는 고백, 밤이 깊어질수록 더 또렷해지는 짧은 기도의 숨. 이런 것들이 앞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도, 안쪽에서 우리를 단단히 묶어 줍니다. 사랑이 그러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라”(골로새서 3:14). 눈에 잘 띄지 않는 띠일지라도, 그것이 풀리면 옷이 형태를 잃고 맙니다.

수선을 마치고 외투를 건네받을 때, 할머니는 주머니를 살짝 뒤집어 군데군데 실밥을 정리해 주셨다고 말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마음의 주머니에도 오래 접어 넣어 둔 종잇조각들이 있었습니다. 알아차렸으나 말하지 못한 고마움, 알면서도 늦춘 사과 한 장. 오늘 같은 날엔 그중 한 장을 꺼내 펼쳐 보아도 좋을 듯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마음속에서 또박또박 불러 보는 것만으로도, 느슨해진 단추에 실 한 올을 더 보태는 셈이 되겠지요. 꼭 큰 손놀림이 아니어도, 매듭은 조용한 데서 생깁니다.

가게 문을 나서니 빗방울이 지붕을 톡톡 두드리며 바늘소리처럼 이어졌습니다. 단추는 예전보다 제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어깨에 얹히는 저녁 공기가 한결 덜 흔들렸습니다. 우리 삶도 어쩌면 이렇게 수선을 거치며 밤을 건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사랑이 묶어 주는 힘으로. 오늘, 각자의 안쪽 솔기는 어떤 안부를 전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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