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3월 12일 07시 01분 발행
점심 무렵, 동네 구둣방에 들렀습니다. 문을 밀자 종 하나가 작고 맑게 울리고, 비닐 발막이 너머로 낮은 등불이 묻은 빛을 바닥에 펴 놓고 있었습니다. 본드 냄새에 가죽의 온기 같은 향이 섞여 오래된 시간의 숨결이 났습니다. 카운터 옆 나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구둣장이의 망치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이어졌습니다. 탁, 탁, 탁. 그 소리는 혼자 뛰는 심장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맡긴 구두는 한쪽 굽이 더 많이 닳아 있었습니다. 바닥의 무게를 몰아 기울었던 날들이 있었겠지요. 굽의 모서리는 모래처럼 부서져 얇아져 있었고, 안쪽에 인쇄된 사이즈 숫자는 반쯤 지워져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시는 사라지는데, 발을 안쪽에서 받쳐준 흔적은 더 선명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앞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잠잠해졌습니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꼭 손실만은 아니겠구나, 지나온 걸음의 증거가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구둣장이는 아무 말 없이 굽을 떼어내고 새 고무 굽을 맞춰 올렸습니다. 얇은 못이 작은 은빛 새들처럼 줄지어 기다렸다가, 한 마리씩 가죽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망치가 못 끝을 누를 때마다, 작은 금속의 울림과 함께 제 안에서도 묘한 안도감이 일어났습니다. 라디오는 멀리서 낮은 볼륨으로 흐르고, 달력 위 붉은 동그라미는 한 달의 겨울 끝자락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햇빛은 비스듬히 들어와 작업대 위 하얀 가루를 반짝이게 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방 안의 것은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이사야 42:3). 대단한 수선이 아니라, 쓰임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균형을 돌려주는 일. 눈에 띄는 광채보다는, 다시 한 걸음이 가능한 무게로 맞춰주는 손길. 신앙의 위로가 그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대는 곳은 처음처럼 새것을 보장하는 약속이 아니라, 지금의 낡음 속에서 다시 걷도록 해 주는 자비라는 사실을요.
사람마다 자기만의 기울어진 굽을 하나쯤 품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비스듬해질 때가 있고, 마음의 결이 한쪽으로 쏠릴 때가 있습니다. 티 나게 망가진 건 아니어서 그냥 넘어가게 되지만, 저녁 무렵 발바닥처럼 삶의 밑면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잠시 멈춰 맞춰 앉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고치기 위해서라기보다, 제 발이 어디에 닿고 있었는지 조용히 확인하려는 마음으로요.
수선이 끝나자 구두의 무게가 아주 조금 달라졌습니다. 손에 들었을 때보다 바닥에 붙였을 때가 더 분명했습니다. 소리가 반 톤 낮아지고, 걷는 폭이 고르게 퍼졌습니다. 구둣장이는 영수증을 건네며 웃었고, 저는 새로 칠한 광택보다 소리의 변화가 더 오래 기억될 것 같았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 낮은 등불 아래 남겨진 못 몇 개가 반짝였습니다. 오늘 제 안에서도 보이지 않던 못 몇 개가 제자리를 찾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에는 종종, 그렇게 눈치채기 쉬운 바꾸어짐이 찾아옵니다. 화려하지 않은 수선, 그러나 다음 발걸음의 균형을 돌려주는 손길. 그 은은한 차이가 하루를 지탱합니다. 저마다의 기울기 속에서도, 누군가는 끝까지 꺼지지 않도록, 꺾이지 않도록 곁에서 무게를 나눠 들고 계십니다. 그 사실 하나로 오늘의 길이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구두 밑창이 바닥을 쓰다듬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고, 저는 그 리듬을 따라 천천히 집 쪽으로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