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계방의 호흡

📅 2026년 03월 14일 07시 00분 발행

상가 셔터가 하나둘 내려오는 저녁, 시장 끝 모퉁이에 불빛이 아직 남아 있는 집이 있습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시계방, 유리 진열장 안에는 오래된 탁상시계와 새것 같은 손목시계가 빽빽하게 서 있고, 벽 쪽에는 서로 다른 박자에 맞춰 초침을 움직이는 시계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금속과 기름이 섞인 얇은 냄새가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주인 어르신은 둥근 돋보기를 눈에 올리고,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조그만 나사를 천천히 돌리고 계십니다.

줄이 낡아진 제 시계를 건넬 때, 어르신은 시계를 귀에 바짝 대고 한참을 듣습니다. 말없이, 그러나 정성스레. 그 사이 유리 진열장에 비친 제 얼굴이 작게 흔들립니다. 시계 하나의 심장 소리를 들으려면, 주변의 잡음을 잠시 잊어야 한다는 것을 그 방은 가르쳐 줍니다. 조그만 나사 하나, 머리핀보다 가느다란 스프링 하나가 맞물리면, 그 작은 방 안의 공기도 조금 고요해지는 듯합니다.

어르신은 제 시계를 뒤집어 축을 닦고, 바늘을 살짝 들어 올려 결을 맞추고, 점처럼 작은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립니다. 한참 후 시계를 제 손에 다시 올려놓으며 조용히 웃으십니다. “이 시계는 약간 느린 박자를 좋아하네요.” 그 말이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누구는 빠르게 걸어야 편하고, 누구는 반 박자 쉬어야 숨이 맞는 사람이지요. 같은 시간을 지나도 같은 속도로 살지 않는 우리들, 그 차이를 멀리서 들으면 잡음 같다가도, 가까이 귀를 대면 어느 쪽도 틀리지 않은 리듬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요즘 마음이 앞서가다 금세 뒤처지는 분들이 계실지요.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먼저 뛰고, 막상 시작하면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날. 제 가슴 속에서도 초침과 분침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 시계방이 떠오릅니다. 귀를 대고, 숨을 낮추고, 아주 작은 소리에 시간을 맞추는 손길. 그 손길 속에는 빠르게 고치려는 조급함보다, 오래 듣는 믿음이 자리합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는 시편의 고백이 그 방의 공기와 나사를 따라 조용히 울립니다(시편 31:15).

진열장 아래 서랍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낡은 종이봉투들에 연필로 적힌 글씨가 보입니다. ‘태엽’, ‘축’, ‘유리’, ‘초침’. 이름이 분명한 작은 부품들. 우리 마음에도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과 기억들이 조용히 누워 있겠지요. 때가 오면 꺼내어 닦고, 작게 기름 치듯 다독여야 맞물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억지로 돌리면 부러지고, 오래 듣다 보면 비로소 자기 자리에 들어가는 일들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시계를 벽에 걸자, 방 안이 아주 미세한 소리로 채워집니다. 낮 동안의 분주함이 작은 물결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오늘의 엇박자도 한밤의 호흡 속에서 제 자리를 찾는 느낌입니다. 나무틀에 남은 옅은 흠들이 스탠드 불빛을 받아 무늬가 되어 나타나듯, 마음 위에 남은 작은 상처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닿아 다르게 빛날지 모릅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오늘의 시간이 조금 더 너그러워집니다.

그 시계방에서 배운 것은 그리 대단한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오래 듣고, 아주 작게 맞추는 일. 그 작은 조율이 하루를 바르게 걷게 합니다.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들이 한 벽을 함께 채우고도 서로의 소리를 방해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각자 받은 박자대로 걸으면서도 같은 저녁을 나눌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이 시간 또한 괜찮은 얼굴로 우리 곁을 지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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