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을 다시 붙이던 저녁

📅 2026년 03월 19일 07시 01분 발행

골목 끝에 불빛이 낮게 걸린 작은 수선소가 있었습니다. 비닐발이 너풀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가니, 오래된 달력과 라디오 소리가 한 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본드 냄새와 가죽 냄새가 섞여 있었고, 나무망치로 못을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졌습니다. 탁, 탁, 탁. 그 소리 사이로 시계 초침이 천천히 뒤따르는 듯했습니다.

벽에는 수선을 기다리는 신발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습니다. 까진 굽, 비스듬히 닳은 바닥, 누구는 발끝이 먼저 닳고 누구는 뒤꿈치가 먼저 얇아진 자국들. 신발마다 걸어온 시간이 묵묵히 붙어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번호표 대신 얼굴을 기억하는 분이셨고, 응대는 조용했으나 손놀림은 분명했습니다. 오늘 안에 된다는 약속보다, 지금 여기서 정성껏 붙잡아 준다는 태도가 먼저였습니다.

밑창을 떼어내고, 거칠어진 자리를 다듬고, 얇게 풀을 바른 뒤 한 번에 눌러 붙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장갑 낀 손끝에서 망설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못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 넣을 때마다, 귓가에서 심장 박동이 커지는 듯했습니다. 나무토막 위에 뉘어진 신발이 잠시 몸을 맡기고 있는 모습이, 안도의 표정처럼 보였습니다.

문득 내 삶의 밑창을 떠올렸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제일 먼저 닳아 가는 자리. 말끝의 피로, 미소의 얇아짐, 이유 모를 깊은 한숨 같은 것들이 거기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고쳐 신어온 날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전해 준 짧은 안부, 뜨거운 차 한 잔, 다정하게 놓아 주던 기도의 손길이 낡은 마음의 바닥을 덧대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새것으로 갈아치우는 일이 아니라, 다녀온 길을 인정하며 다시 붙여 주는 수선이었습니다.

어느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던 말씀(이사야 42:3). 오래 들고 다녀 가장 많이 닳은 자리부터 어루만지는 마음이 그 구절 속에도, 이 작은 가게의 손놀림 속에도 고요히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바깥은 금세 어두워지고, 가게 등은 조금 더 환해졌습니다. 유리문 위로 작은 벌레들이 모여 들었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한 켤레씩 신발을 받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습니다. 종이 영수증에는 둥근 글씨로 금액이 적혀 있었고, 더 오래 신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부드럽게 뒤따랐습니다. 신발은 다시 주인을 집으로 데려갈 준비를 마친 채, 문턱을 살짝 밟고 뛰어내렸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구두를 신어 보니, 발바닥이 먼저 안심한다는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밑창이 조용히 대답해 주는 듯했습니다. 오늘의 길은 다르지 않지만, 바닥이 조금 더 친절해진 것 같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새 신을 곧장 내어주시는 분이라기보다는, 닳은 신을 끝까지 붙잡아 주시는 분에 더 가까우실지 모른다는 생각. 내 걸음의 각도와 무게, 오늘이 어제보다 얼마나 흔들렸는지까지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비가 온 뒤 생기는 물웅덩이와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에서도, 다시 걸어 볼 마음이 조용히 살아났습니다. 수선대 위의 등불 아래에서 마음 한 켠도 함께 붙여진 느낌이었습니다. 서둘러 달리려던 마음은 한 박자 늦춰지고, 발과 땅이 합의하는 속도가 떠올랐습니다.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다시 탁, 탁, 탁, 작은 망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치 내 안 어딘가 흩어진 리듬을 누군가 맞춰 주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 소리를 등에 지고 걸어나오니, 오늘 밤 신발이 먼저 쉬고 마음도 뒤따라 놓일 것만 같았습니다.

Scroll to Top